‘신세계’는 항상 거대한 충격을 안긴다

▲ 늘 축제 분위기인 살바도르는 사람들의 독특하고 열정적인 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며 막연히 생각했었다. 성인이 되는 날에 꼭 클럽을 가봐야지! 그래서 성인이 된 1월 1일, 친구와 난 신분증을 당당히 들이밀고 홍대 클럽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대하고 들어갔던 클럽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들어갔던 시간은 저녁 9시 정도, 그 이른 시간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했다.
하지만 친구와 난 굴하지 않고 밖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재입장을 시도했고 우여곡절 끝에 우린 사람이 붐비는 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에게 ‘신세계’를 보여줬다.

첫 날, 우왕좌왕 숙소 가는 길
동유럽을 여행하고 있을 때 브라질의 정세는 그리 좋지 않았다. 월드컵 개최와 공공버스 요금 인상에 대해 불만을 가진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에 들어갔고 곧 브라질로 가야하는 나의 일정에 조금씩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독일로 향하는 길에서 브라질 기사를 계속 찾아보는데 몇 명이 시위를 하다 죽었고 또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는 기사가 연달아 올라오면서 나의 공포는 극에 다다랐다. 결국 나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려다가 살바도르라는 해변 도시로 가기로 했다. 시위가 가장 심각한 리우데자네이루 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결국 브라질로 떠나는 시간이 다가왔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총 11시간을 비행해 브라질, 살바도르에 도착하게 되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공항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찾아가 숙소가 있는 곳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었고 직원은 친절히 타고 갈 버스를 알려주었다. 공항 밖으로 나와 정류장에 가니 이미 외국 여행자들 네 명 정도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목적지가 같아 함께 버스를 타게 되었다. 다행히 그 중 한 명은 포르투갈어와 영어 두 언어를 모두 할 줄 알아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에서 통역사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구시가지로 향하는 버스 안,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흑인 청년이 나에게 포르투갈어로 말을 걸었다. 난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고 그냥 웃으면서 “What?”이라고 대답해 줬더니 뭐라 뭐라 거친 말을 내뱉는다. 이번에도 당연히 알아듣지 못해 별다른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흑인 누님이 그 청년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둘이 싸우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흐르고 진정이 좀 됐을 때, 갑자기 어떤 브라질 아저씨가 우리에게 이제 내려서 택시를 타야한다고 말해줬다. 본래 이 버스가 정해진 노선대로 가면 우리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지금은 크게 시위를 하고 있어서 구시가지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린 좀 당황하긴 했지만 버스 기사님도 같은 말을 해 결국 선택의 여지없이 버스에서 내렸고 다행히 처음에 알려준 아저씨도 택시를 잡아준다며 같이 내렸다. 그런데 좀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다투던 그 청년과 누님도 우릴 도와주러 같이 내린단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구시가지를 향해 달리는 키스 택시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대책회의를 했고 택시를 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결국 택시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브라질 3인도 함께 타게 되었다. 이들이 왜 따라온다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따로 가자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어서 결국 같이 택시에 올랐다.
택시 정원은 7명, 우리는 8명, 1명의 자리가 부족하다. 그때 버스 안에서 싸웠던 그 청년의 무릎위에 누님이 앉는다. 분명히 버스에서는 이 둘이 모르는 사이였는데,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하지만 진짜 신기한 광경은 바로 다음에 일어났다.
택시가 출발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내 바로 옆에서 이 청년과 누님이 정열적인 키스를 시작한다. 아!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난 대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모르던 사이였던 게 분명해 보였는데, 소리 지르며 싸우던 사람들이 지금은 키스를 하고 있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다 같이 있는 이 택시 속에서,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할까. 역시 남미는 날로 새롭다.
키스 택시는 우리의 목적지인 구시가지 광장에 도착했고 때마침 그곳은 브라질과 스페인의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 응원이 한창이었다.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축구의 고장 브라질에서 보는, 그것도 스페인과의 결승전이라니! 좀 전 택시에서 느꼈던 충격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바로 브라질 사람들 사이에 껴들어 열정적인 응원을 시작했다. 마치 우리나라의 시청 앞 광장에 붉은 악마가 모여 응원하듯이 이곳 구시가지 광장에는 브라질 사람들이 모여 열정적인 응원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브라질의 3-0 완승, 이렇게 대승을 거뒀으니 브라질 사람들과 난 얼마나 기뻤겠는가. 나도 크게 기뻐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사람들이 환호하며 각종 진한 스킨십으로 그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스킨십에 관대하고 정열적인 곳이었다. 남미, 그중에서도 브라질은 사랑이다.

오로지 현실을 즐길 수 있는 곳
브라질 살바도르는 옛 16세기 중반부터 끌려온 흑인 노예들이 그들의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워온 도시다. 어찌 보면 흑인의 도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 생활 방식, 열정적인 흥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광장 한 가운데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서로 발차기를 하며 추는 카포에라, 대낮부터 광장을 가득 채우는 북소리와 그에 맞춰 즐겁게 춤추는 사람들 그리고 항상 흥에 겨운 얼굴로 나에게 따봉을 보내는 현지 친구들까지. 이곳은 바로 ‘신세계’, 모든 것이 흥겹고 새로운 곳이다.
남미 사람들이 정열적인 것은 보통 다 알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브라질 사람들은 단연 그 수위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특히 살바도르 사람들은 흥이 차다 못해 넘쳐버릴 정도로 정열적인데, 그런 그들의 삶 덕분에 나도 내일 걱정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그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장 위험했던 곳에서 가장 생각 없었고 그래서 가장 즐거웠다.
타인의 시선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현실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고 안쓰러운 삶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이들처럼 정열적으로 표현하고 사랑하고 또 즐기다보면 삶의 만족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온전히 현실을 즐길 수 있는 곳. 이곳을 난 ‘신세계’라 표현하고 싶다.

▲ 브라질의 승리를 기념하며 쉘 위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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