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시선과 동작이 공연을 완성한다

 
“낮춰, 낮춰. 눈 마주치지 마.”
일요일 저녁 6시 문화관 지하 무용실엔 죄수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음악이 켜지자 무용실은 차가운 감옥이 되었고 앞의 학생은 어느새 ‘장발장’이 된다.
장발장과 죄수들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독기 서린 눈빛으로 보이지 않는 밧줄을 당겨 노역을 시작한다. 간수는 채찍을 휘두르며 죄수들을 감시한다.
학생들의 연기를 보고 있던 신영섭 교수의 날카로운 지적이 날아온다. “이 씬의 목표가 뭐야? 생각과 관련 없는 움직임은 모두 필요 없는 움직임이라고 말했잖아!”
연극학부 정규 교과과정인 ‘3ㆍ4학년 제작 실기 연습’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번 학기 4학년 제작 실기 뮤지컬은 ‘레미제라블’로 선정되었다. 3월에 제작 실기 팀이 꾸려지고 나서 바로 오디션을 시작했다. 오디션으로 배역이 정해진 뒤로 매일 연습이 이어졌다. 주말이라도 예외는 없다. 학생들은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무용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때로는 자정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을 채워야 해”
같은 음악이 꺼지고 다시 틀어지기를 반복한다. 음악이 끊기자 이내 신 교수는 연기하던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거기서 너는 동작을 그렇게 했어?” “장발장이 신부의 사랑을 느낀 부분인데 그 사랑을 가방에 그렇게 쑤셔 넣을 수 있을까?”
신 교수의 물음에 학생들은 스스로 해석한 극 중 인물에 대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연습하는 동안 교수와 학생 사이에 진지한 피드백이 오간다. 신 교수는 “끊임없이 그 인물이 되어야 해. 그 생각이 커져서 스스로를 채우는 거다”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작은 시선과 움직임이 공연 전체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연기하는 학생들은 모두 긴장한 상태로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한다. 장발장 역을 맡은 전상준(연극학부4) 군은 “장발장이 신부의 사랑으로 새로운 인생을 결심하게 되는 독백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다”며 연기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신 교수는 전 군에게 “인간다움을 고민해야 한다”고 그에게 설명한다.
신 교수는 “배우는 인간을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연기가 어려운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신 교수의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연습을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1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한 몸처럼 움직이던 학생들의 움직임이 제각각 달라진다.
몇몇 학생들이 무용실을 나가 잠깐의 자유를 즐긴다. 한 학생은 구석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대본을 빠르게 읽는다. 대본에는 작은 글씨들이 줄지어 쓰여 있었고 형광펜으로 표시된 곳도 있다.
또 다른 학생은 무용실 가운데 무릎을 꿇고 맡은 장면을 되뇌인다. 그는 어떤 동작이 적합한지 고민하는 듯 빠르게 움직여도 보고 천천히 움직이기도 한다. 무용실 한 편에서 에포닌과 마리우스 역을 맡은 두 학생은 서로의 합을 맞추어 본다. 한편 연출팀은 한 학생과 극중 인물에 대한 토론에 열을 올리고 있다.

1·2학년도 함께 힘을 모아
낮고 무거운 음악에서 가벼운 음악으로 바뀌자 구석에 앉아있던 여학생들이 일어나 연습실 가운데를 차지한다.
2학년 학생들로 이루어진 앙상블이다. 앙상블이란 배우 전원의 협력에 의해 통일적인 효과를 얻으려는 연출법이다.
그녀들은 재잘거리는 여공이었다가 사연 많은 창녀촌의 창녀들이 되었다. 이내 주정뱅이들이 되어 탁자 위에 쓰러진다. 여학생들은 모두 긴 치마를 입고 있다.
춤을 출 때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흥겹게 춤을 춘다. 그런데 의자에 올라가 춤을 추고 노래를 할 때 종종 긴 치마에 걸린다.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의연하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녀들은 배역이 바뀔 때마다 모두 각각의 다른 사람이 된다. 2학년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면 앞에 앉아서 후배들의 연기를 보고 있던 4학년 학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른다. 선배들의 노래가 더해져 연습 분위기는 더 흥겨워진다.
한편 지하 2층 무용실 뒤편에선 1학년 학생들이 3학년 제작 실기 연극 ‘사천의 선인’에 쓸 소품을 준비한다.
1학년은 소품으로 만든 화살을 칠하고 의상을 리폼하는 등 3·4학년 제작 실기에서 스텝으로 활동한다. 소품과 의상은 공연 몰입에 중요한 요소이다. ‘사천의 선인’에서 연출을 맡은 이지은(연극학부3) 양은 소품이 이번 공연에서 공들인 부분이라며 “소품들을 과장해 상징화시켰다”고 말했다. 이 양의 말대로 동전, 담배, 경찰의 옷 등 소품들이 각자의 상징에 맞게 일부가 굉장히 크고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힘들고 지치지만 그래도 끝까지
밤 11시가 넘어가도록 연습이 이어졌다. 연출팀과 학생들은 계속해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이어지는 피드백으로 노래, 연기, 시선처리 방식이 조금씩 바뀐다. 바뀐 대로 다시 연습이 반복된다. 쉼 없이 계속되는 연습에 학생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지만 신 교수는 “숨소리 내지마”라며 숨소리조차 배역에 맞게 연기하도록 지도한다.
레미제라블의 연출을 맡은 김지영(연극학부4) 양은 “밤늦은 연습 후에 다른 수업을 들어야 해서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양은 “나중에 팀을 꾸려 창작 뮤지컬을 직접 연출하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코젯 역을 맡은 구수지(연극학부4) 양도 “상대방과 호흡하며 스스로가 정말 그 인물이 되는 순간 희열을 느낀다”고 말하며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연극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말처럼 매일 밤늦게까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녹록치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열정으로 묵묵히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번 3학년 제작 실기는 연극 ‘사천의 선인’과 뮤지컬 ‘올 슉업’이고, 4학년은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연극 ‘시련’으로 총 4개이다. 이해랑예술극장에서 5월 27일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해 각각 4일 동안 공연하며 6월 20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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