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시인의 ‘지지 않는 꽃’

올해는 미당 서정주 탄생 100주년이다. 미당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임과 동시에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시와 함께 겪어온 시인이다.
책 ‘미당 서정주 대표 시 100선’은 수많은 미당의 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100가지 시를 선정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책에 담긴 시들은 미당의 생애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등단 당시인 20대 초반 청년 시절부터 작고 전에 남긴 시까지. 미당은 어떤 시들을 남겼으며 오랜 세월 후인 지금 시점에서도 이 시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1935년에 발표된 미당의 초기 시 ‘자화상’의 한 구절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시 ‘자화상’은 미당이 20대 시절에 쓴 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80년 전에 쓰였던 시지만 여전히 향기로운 시다. 수많은 20대 대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막막함으로 방황을 하는 요즘처럼 ‘팔 할의 바람’은 당시 우리처럼 고민하던 20대 미당의 사색을 그대로 드러낸다.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즈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위는 미당의 중기 작품 중 하나인 ‘동천’이라는 시다. 1969년 발표된 시로 그의 중년 시절 쓰인 시이다. 미당이 직접 불교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이 시 속엔 미당의 ‘영원성’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그의 20대가 방황과 자아에 대한 사색이었다면 중년은 ‘영원성’ 등을 추구한 것이다.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시를 못 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깎어주자./ 발톱도 또 이뿌게 깎어주자.”
이는 ‘80소년 떠돌이의 시’에 수록된 ‘늙은 사내의 시’의 일부이다. 미당 자신의 노년을 담은 이 시는 단순한 독백이 아니다. 언어적 측면에서 시적 허용을 통해 한국어의 소리를 부각해주며 의미론적으로는 삶에 대한 초연함이 엿보인다. 즉 미당이 한글을 풍부하게 잘 활용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의 삶이 말년에 와서 어떤 사색을 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책 ‘미당 서정주 대표 시 100선’은 미당의 시를 시간순으로 나열하여 보여준다. 독자들이 미당의 생애를 따라가며 시를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미당의 시는 생애에 따라 특징적인 형태를 띤다. 말하자면 미당 자신의 삶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20대부터 말년까지 그의 시는 삶과 함께 변화해 왔다. 타인의 삶을 본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여백을 찾는 것이다. 삶, 시대, 사색 등 농후한 향기를 담은 미당의 시를 통해 우리 삶의 ‘여백’을 탐색해 보는 것은 어떨까. 책 속에서 미당의 언어에 담긴 향기를 느끼면서 나 자신의 향기를 돌아보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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