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다.
태어남을 의미하는 Birth와 죽음을 의미하는 Death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Choice)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래서 선택을 잘하는 것이 곧잘 사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선택을 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과 저것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정말 잘 선택한 것일까? 선택을 잘하려면 좋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안목, 즉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에겐 지혜가 있지만 달을 가리는 구름처럼 지혜로운 안목을 가리는 것이 바로 욕심이다. 우리는 욕심에 눈이 가려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보니 잘못된 선택을 한다.
이 잘못된 판단을 수습해보려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다. 그런데 거짓말이라는 것은 늪과 같아서 그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을수록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요즘 동국대 총장 선출을 놓고 벌어진 일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지혜로워지려면 무엇보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비울 때 우리는 눈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로운 눈, 맑은 눈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비워진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깨어 있다고 말한다. 늘 비우고 버려서 깨어 있는 마음이 되도록 애쓰는 것이 수행이다. 부처님께서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하셨다.
살아 있는 마음으로 제대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의 흐름을 마냥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삶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다.
마치 죽은 물고기는 강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세찬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것처럼.
물론 기성의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은 편하고 안락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냄비 속의 개구리와 다를 바 없다. 처음에는 따뜻하고 안락한 것 같지만,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삶기고 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 있는 마음으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아마도 오늘을 사는 청춘들을 위해 하신 말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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