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남산에 올라가면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우리말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더 크게 들린다. 이렇게 멀리 외국에서 일부러 찾는 남산인데, 아직도 남산을 가본 적이 없는 학우가 의외로 많다. 동국대학교에 다니면서 남산을 못 가보고 졸업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내가 담당 과목의 1학기 강의계획서에는 ‘남산에 꽃이 피면…’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금은 법대의 족보(?)가 되어 많이 알려졌지만, 처음 이 문구를 접하는 학우들은 어리둥절해 한다.
붉은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봄을 알리면, 벚꽃도 서서히 봉오리를 맺고 연분홍으로 물든다. 그리고 남산이 수채화로 채색되면 남산으로 향한다. 꼭대기에 있는 N타워를 가는 것이 아니다. 숨겨진 벚꽃의 명소인 순환도로를 걷는 것이다. 눈으로만 즐기는 벚꽃은 맛이 없다. 역시 벚꽃놀이에는 막걸리를 빠뜨릴 수 없다.
교내 편의점에서 감자칩과 과자류, 음료수를 산다. 단골 식당에 부침개와 계란말이를 주문하기도 한다. 서울의 대표주인 ‘장수’ 막걸리 박스도 챙긴다. 금년에는 전남 담양에 사는 대학원생 제자가 지역 막걸리 ‘블루라벨’을 보내주어 럭셔리한 잔치를 벌였다. 술병의 라벨이 마치 여느 프리미엄 양주의 블루라벨과 같아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법과대학 경비원 아저씨들께도 몇 병을 드렸는데 평판이 좋다.
순환도로를 따라 남산 케이블카 방향으로 걸으면 정자가 보인다. 이곳이 벚꽃놀이의 아지트다. 정자에 올라 술과 안주를 풀어 놓고 빙 둘러앉는다. 한 명 한 명의 잔을 따라준 후 건배를 한다. 자기소개도 하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때로는 학교에서 못한 상담을 하기도 한다. 가슴 깊숙이 묻어둔 삶의 응어리를 눈물로 푼다. 짠하고 안쓰러운 이 시대 청춘의 군상이다.
벚꽃놀이에 술을 마시는 풍류는 유학시절에 배웠다. 일본에는 화견주(花見酒)라 하여, 하얀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려 술잔에 떨어지면 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다. 지도교수님을 따라 원생 모두 벚꽃의 명소인 우에노 공원에 몰려가 엄청나게 마셨다.
사제지간이 예전보다 삭막해졌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나의 대학 시절에는 그 정이 훨씬 돈독했다. 교수님께 야단도 맞았지만 사랑도 많이 받았다. 인생은 ‘추억 쌓기’가 아닌가. 재학 중에 맘에 드는 교수님을 인생의 멘토로 삼아 삶의 방향을 찾아보길 권한다.
화견주를 전수해 주신 일본의 지도교수님은 작고하신지 오래지만, 나와 함께 한 막걸리의 전통은 훗날 누군가에게 전승될 것이다. 내년 1학기에도 ‘남산에 꽃이 피면…’의 전통은 이어진다. 2학기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볼까? 이름 하여 ‘남산에 단풍이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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