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속 현대인을 진단하다

 
우리는 피곤하다. 항상 시간이 없고 바쁘다. 기업공채, 자기개발, 힐링, 공부, 아르바이트…… 이미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눈 깜빡할 새 또 늘어나 있다. 심지어 저 수많은 일을 하는 와중에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수단인지 쉽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목적과 수단이 불분명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매일이 피로하고 혼란스러운 당신에게 한병철의 책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 ‘심리정치’ 이 세 권을 추천해주고 싶다.
세 책의 저자 한병철 교수는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가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 2000년도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데리다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 한 후, 독일과 스위스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현재는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유명해진 계기는 저서 ‘피로사회’였다. 지난 2010년 책 ‘피로사회’는 발간되자마자 독일에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소개되어 중앙일보의 ‘올해의 책(2012년도)’에 선정되는 등 한국 사회를 꿰뚫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간의 향기’, ‘피로사회’, ‘심리정치’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시각으로 진단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과연 저자 한병철이 내린 우리 사회에 대한 진단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피로하게 하며 착취하는 것일까.

지배 없이 착취하는 ‘피로사회’
“우리는 왜 피곤하게 사는가?”
책 ‘피로사회’에서 저자 한병철은 이 의문에 대해 깊게 파고들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이후 우리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넘어왔다고 한다. 통제와 억압이 주가 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주로 하는 사회로 넘어온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더 높은 성과를 이루려면 개인에게 ‘강제적인 노동이 아닌 자율적인 노동’을 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이를테면 “아프니까 청춘이다”같은 어구로 열정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계속해서 사회는 개인에게 ‘자발적 노력’을 부추긴다. 개인은 긍정성의 과잉 상태가 되어 ‘성과를 향한 압박’이라는 폭력을 받아들인다. 결국 개인은 ‘해야 한다’를 넘어 ‘할 수 있다’는 사회분위기에 강요당해 소모되어간다. 즉, ‘자기주도’에서 ‘자기착취’로 스스로를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몰아간다. 저자는 이를 ‘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라고 칭하며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자기착취에서 발생하는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킨다. 이 가운데 소진증후군, 우울증, ADHD등이 사회에 만연한다. 결국 개인도 사회도 자폐적 성과기계로 변해가는 것이다.

시간은 향기를 잃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발적 노예를 양산하는 성과사회에 들어서게 된 것일까. 책 ‘시간의 향기’에서 저자는 이와 연결되는 이야기를 꺼낸다. 자기착취와 같은 ‘활동적 삶(Vita acriva)’의 절대화가 시간의 위기와 관계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간의 위기란 시간적 혼란과 반(反)시간성을 의미하는데, 각각 시간의 리듬과 방향성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다. 이는 우리에게 시간이 가속화 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기도 한다.
“오늘의 사회에서는 산책의 유유함도 떠도는 듯한 방랑자의 경쾌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략) 사람들은 유유자적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에서 저 사건으로, 이 정보에서 저 정보로, 이 이미지에서 저 이미지로 황급히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시간의 위기는 시간에게서 향기를 빼앗아 갔다. 노동은 절대적 명령이 되었고 인간은 일하는 동물로 전락했다. 사색적 삶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삶은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우리는 더 빨리, 무언가를 쫓기 위해 불안해하며 달린다.

자유로운 개인, 스스로를 수감한다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
책 ‘심리정치’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에 이어 ‘심리청치’는 자유 자체의 착취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유를 발전된 형태의 속박으로 바라본다. 자유가 ‘할 수 있다’를 넘어 ‘하고 싶다’라는 욕망을 창출하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를 한층 더 자발적인 노예로 이끌어가는 한편 착취에 대해 인식조차 못하도록 한다. ‘해야 함’에는 제한이 있지만, ‘할 수 있음’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권력 기술은 금지하고 방지하고 억압하기보다, 내다보고 허용하고 기획한다. (중략) 우리는 고문과 협박으로 자백을 강요받는 대신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다 털어놓는다. 스마트폰이 고문실을 대신한다. 빅브라더는 이제 친절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심리정치’가 주도하는 사회에선 지배가 저절로 이루어지며 사회적 저항이 일어나는 대신 우울증 환자가 양산된다. ‘심리정치’ 혹은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자유 자체를 효율적으로, 매우 영리하게 착취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무한한 자기 생산이 가능하다는 환상 속에서 스스로를 마모시키고 있는 샘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일견 섬뜩하기 까지 하다. 무한한 긍정의 힘으로 인해 피로해지는 사회, 사색 없는 삶이 불러온 시간의 위기 등 저자는 우리가 평소 자각하지 못하는 시대의 문제들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피로사회’로 시작해 ‘심리정치’까지, 한병철 교수는 현대사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진단해낸다. 이 진단서를 통해 우리 삶의 환부를 한 번 살펴보자. 어딘가에서 우연히, 자기착취의 수갑을 푸는 열쇠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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