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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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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의 행복을 찾아 떠난 세계여행 <14> 헝가리잠시 멀어질지라도 인연은 결국 내 앞에 서게 된다

   
▲ 도나우강과 세체니 다리. 한 폭의 그림처럼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가 떠오른다.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유럽에 대한 막연한 동경 그리고 로맨스를 꿈꿨다. 이 영화를 볼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명대사이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 대사는 ‘인연이 잠시 멀어져도 긴 시간동안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이렇게 그 사람 앞에 서게 된다’이다. 이 대사를 보며 세상 어딘가에 인연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막연한 설렘을 느꼈다.

밤이 더 빛나는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의 동행들과 헤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어 헝가리로 향했다. 헝가리행 기차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왠지 모를 적적함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요 근래 새로운 도시로 이동할 때는 항상 동행하다가 갑자기 혼자 이동을 해서일까, 기차 객실에 홀로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이렇게 처량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고 적응되리라. 마음을 다잡고 힘차게 다시 일어서본다.
아침 일찍 도착해 트램을 타고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여느 유럽 거리와 다를 게 없었다. 유럽 특유의 건물 양식과 사람들의 여유 있는 걸음걸이, 요 몇 주간 유럽을 여행하면서 봐온 모습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이동 시간에 쌓인 피곤함을 덜어내려 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헝가리의 묘미는 바로 야경이 아니던가. 마침 적절한 시간대에 일어나 간단히 짐을 챙겨 숙소 밖으로 나왔다. 오전 중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던 시내가 밤이 되자 갑자기 살아났다. 오히려 낮보다 밤이 더 활기찬 느낌이었다. 젊은이들은 공원에 나와 맥주를 즐기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고 어르신들도 한결 시원해진 공기를 느끼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백야 현상으로 인해 해가 완전히 사라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한여름의 더위를 잊기엔 충분히 좋은 시간대였다.
숙소를 나와 20분 정도 걸었을까 헝가리를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이 눈앞에 펼쳐졌고 그 위에는 세체니 다리가 조명에 비쳐 그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세체니 다리의 양 끝에 있는 사자 상에서 시작해 어부의 요새, 부다 왕궁 그리고 마차슈 성당까지,
어두운 밤 화려한 피로연장에 들어가 흥겨운 왈츠를 들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같은, 이 밤을 빛내고 있는 화려한 부다페스트의 불빛에 가슴 깊숙한 전율을 느꼈다.

전망대에서 만난 인연
부다페스트 여행 코스의 마지막은 역시 도시 전체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이곳에 올라가면 도시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데,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올 때 더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부다페스트를 볼 수 있어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 반짝이는 도시 야경에 흠뻑 취해있을 때 바로 옆에서 이야기가 들려왔다. “한국 사람이세요?” 아름다운 야경에 빠져있던 정신을 빼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그곳엔 더 아름다운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내가 무엇에 빠져있었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 그 예쁜 얼굴과 반짝이는 눈망울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멍하니 있으면 내가 외국인인 줄 알고 그냥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로 대답했다. “네 맞아요! 저 한국인이에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인연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했던가. 아니면 내가 인연으로 끼워 맞추려는 것인가. 전자든 후자든 상관없었다. 그냥 왠지 인연인 것만 같았고 반짝이는 부다페스트의 야경 앞에 있으니 기분이 더 설렜던 것 같다. 그녀에게 같이 걸어 다니면서 야경을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고 대답은 “YES!” 그녀의 물음에 진심으로 행복했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동산을 올라오며 보았던 똑같은 건물이며 강이며 다리였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더 아름답다. 주위의 모든 조명들이 우릴 향해 비추는 것 같았고 이 도시는 우릴 위해 존재했다. 같이 부다 왕궁에 올라 어부의 요새를 구경했으며(묘하게 핑크빛이었던 기억이 난다), 바로 옆에 있는 마차슈 성당도 둘러보고(이것도 핑크빛이었다), 마지막으로는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세체니 다리를 걸었다(얘도 핑크빛). 마음가짐 하나로 모든 세상이 핑크빛으로 빛나다니, 아 이것이 인연인가 싶었다. 세체니 다리를 건넜을 때는 이미 시간이 자정을 넘었고 둘 다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많이 아쉬웠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 이제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고 혹시 내일은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 인연은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향한단다. 아 신이시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리 야속하신 겁니까. 우리의 짧은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핑크빛 세상은 다시 빛을 잃고
아름다웠던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순식간에 빛을 잃어버렸고 핑크색으로 빛이 나던 세체니 다리와 부다 왕궁은 모두 흑색으로 변해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속의 불빛은 꺼져버렸고 그녀와 함께 이 도시의 모든 불빛도 꺼져버렸다. 아까는 그리 가벼웠던 걸음이 지금은 천근만근이 되었고 둘이 함께 걸어왔던 거리는 그렇게 짧았는데, 숙소로 가는 이 짧은 거리는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모든 게 변해버렸다. 그래도 많이 속상했지만 많이 설레었던 이 추억에 감사하며 숙소 침대에 홀로 누워 이 문장을 마음속에 되뇌었다.
‘인연이 잠시 멀어져도 긴 시간동안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이렇게 그 사람 앞에 서게 된다.’

   
▲ 부다페스트의 거리. 아직 낮이라 한산하다.

김현석  생명과학전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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