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창선 시사평론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성 전 회장이 남기고 간 메모와 언론 인터뷰 내용은 정권 핵심 실세들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비화되면서 박근혜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만들어 수사에 착수했고, 급기야 이완구 총리가 거듭된 거짓 해명 논란 속에서 총리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의혹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부패비리의 실상을 밝혀내는 일은 지체할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성격을 정확히 인식하는 일이 필요하다. 여권 일각에서는 야당 쪽도 조사해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과거.현재를 다 밝혀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참여정부 시절에 있었던 성 전 회장에 특별사면 의혹도 조사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물론 참여정부 시절의 일이나 야당 정치인들과 관련된 부분도 문제가 드러나면 수사의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 똑같이 조사받고 책임질 일 있으면 똑같이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우선 성 전 회장이 남긴 8명의 의혹에 대한 수사부터 철저히 진행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리고 난 이후에 수사 과정에서 야당 정치인 관련 문제가 나오면 그 때 수사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미리부터 정권 쪽도 수사하니까 야당 쪽도 수사해야 한다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무턱대고 수사를 확대할 경우,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물타기’라는 시선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 의혹은 정권 실세들과 관련된 것이지, 대통령이 ‘정치개혁 차원’으로 해석하면서 책임을 넘기는 정치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이 사건을 자꾸 여야 정치권의 문제로 규정하며 제3자라도 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정권 실세들이 관련된 의혹에 대해 대통령 자신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것은 또 한번의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이 사건은 결국 2012년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져야 할 사안이다. 성 전 회장이 남긴 증언들에 따르면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수십억원의 자금을 대주었다는 것이다. 리스트에 오른 8인 가운데 상당수도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돈을 수수했다는 주장이다. 검찰 특별수사팀은 당연히 박근혜 후보 캠프의 대선자금 수사로까지 가야 한다. 그러나 검찰 안팎의 환경을 보면, 특별수사팀의 철저한 수사 다짐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같이 성역없는 수사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과 법무장관, 그리고 여당 정치인들은 야당도 조사하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 특별수사팀의 수사 내용이 검찰총장은 물론이고 법무장관, 청와대에 다 보고되는 구조에서 과연 현직 대통령 캠프의 대선자금 수사를 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이미 리스트에 등장한 8인에 대한 수사가 지체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민적 의혹거리가 되어버린 부패의 진상이 정치적으로 절충되거나 적당히 덮여진다면 그때는 정권도 죽고 검찰도 죽는 길이 될 것이다. 검찰은 사즉생(死卽生)의 정신을 떠올릴 때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