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흔우 철학과 교수.
나는 보통 강의 첫 시간을 “여러분들은 나와 똑 같은 지적 수준을 가지고 여기에 참석해 있다. 나는 이를 전제로 강의를 해 나갈 것이다. 그러니 나한테 뭔가를 일방으로 배워 갈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라. 진지하게 서로 토론하자”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학 강의의 차별성은 교수와 학생이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 토론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내가 강의에서 중시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의 수업노트이다. 종종 이 노트로 레포트나 시험을 대체하기도 하는데, 예습과 복습 기록은 물론이고 수업 시간에 오고 간 대화 등등을 기록하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놓을 것을 권한다. 얼마 전 ‘욕망’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배달음식 가운데 ‘짬짜면’을 예로 들면서 부정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어떤 학생의 강의 노트에 ‘유교수는 짬짜면을 싫어한다’라고 메모되어 있는 것을 혼자서 한참 웃은 적이 있다. 나는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의 수업 노트를 아직 가지고 있는데, 교수가 했던 농담, 오고 갔던 질문과 대답, 내가 졸면서 흘렸던 침 자국 등등을 보노라면 새삼스러울 때가 많아서 참 좋다.
나는 학생들이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교수는 직책을 가리키는 명칭이므로 존칭을 붙여서는 안 된다. 나한테 교수님이라고 하면 감점하겠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라고 공지하기도 한다. 덧붙여 중국 고대인들이 공자(孔子)를 선생님 중의 선생님으로 높이 불러 공부자(孔夫子)로 부른 것이 Confucius라는 영어 이름의 기원임을 핑계하면서 ‘유부자’로 불러 달라고 은근히 강요하기도 한다. 물론 농담인데, 어떤 학생 하나는 꼭 ‘유부자님’하고 불러준다. 우리 철학과는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교수의 케리커쳐를 선물하는데, 공자 초상화처럼 그려 준적도 있었다.
“선생님은 과거 철학자들의 사상을 강의하거나 관련 논문을 쓰시면서 어떤 의미를 찾으십니까? 저는 어떤 책이든지 척 보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데, 거기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천재인 것 같습니다, 아니 확실히 천재입니다. 저는 강의에서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얼마 전 내 전공 수업을 몇 차례 수강하고 있는 타과 어떤 학생과 대화하는 가운데 있었던 내용이다.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진지하고 긴 대화였는데, 나는 이런 질문이 좋다.
나는 종종 방학 동안 하루만이라도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대로 해 볼 것을 권한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고 ‘숙오(夙寤)’, 새벽에 일어나며 ‘신흥(晨興)’, 글을 읽고 ‘독서(讀書)’, 일이 있으면 실천으로 증명하고 ‘응사(應事)’, 낮이 다할 때까지 부지런하게 노력하며[일건(日乾)’, 저녁에도 항상 조심하고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석척(夕惕)’.” 하루를 깨어 있게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다. ‘경재잠(敬齋箴)’이라는 글도 있는데, “두 개의 일이 있다고 해서 마음이 둘이 되면 안 되고, 세 개의 일이 있다고 해서 마음이 셋이 되면 안 되니, 오직 마음을 전일하게 해서 온갖 변화를 제대로 살펴 대처해야 할 것이다”라고 한다. 자신의 삶에서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길, 숙흥야매의 경재가 아닐까 한다. 이는 나 자신을 단도리하는 경책의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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