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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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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긁어가는 대기업, 갈 곳 잃는 ‘작은 영화’들

“볼만한 영화가 하나도 없네.”
최근 K씨는 친구에게 받은 영화 무료관람권을 사용하지 못해 고민이다. 얼마 전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개봉한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보고 온 이후로 볼 영화가 없어진 것이다. 근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7개 스크린 중 5개를 아직도 그 영화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크린 독점, 국내 영화계 좀먹는다
K씨와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뿐만 아니라 대형배급사들이 제작하는 영화들도 개봉할 때마다 타 영화들에 비해 다수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런 스크린 독점 논란의 중심엔 주로 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경영전략을 채택한 멀티플렉스 영화관들과 배급사들이 서 있다. 대표적으로 작년 개봉한 영화 명량(2014, 김한민 감독)을 들 수 있는데,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소유한 회사가 배급사로 나서면서 스크린 독점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었다. 제작사와 같은 계열사인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위한 개봉관과 스크린이 과도하게 집중된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집계한 영화 ‘명량’의 국내 스크린 점유율은 2014년 8월 4일 기준 39.5%다. 그러나 영진위는 한 스크린에서 두 개의 영화가 상영됐다면 상영회수에 상관없이 하나의 스크린을 점유한 것으로 보는 집계방식을 사용한다.
때문에 영화 ‘명량’의 스크린 수만 계산한다면 이보다 더 높은 수치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명량’은 개봉일(7월 30일) 1159개에서 시작해 8월 5일 1507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8월 5일 당시 국내 스크린 수가 총 2584개였으니 약 58%가량의 스크린에서 1회 이상 상영 된 셈이다.
이와 같은 사례가 꾸준히 발생해온 가운데, 지난해 12월 2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영화 '광해' 등 계열사 영화에 스크린 수와 상영기간 등을 유리하게 제공한 CJ CGV, 롯데시네마를 상대로 불공정행위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멀티플렉스는 복수의 영화를 한 장소에서 동시 상영함으로 관객의 영화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
그러나 스크린 독점 풍조로 인해 이런 장점이 퇴색되고 있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스크린 독점 풍조로 인해 독립영화·예술영화들이 상영관을 찾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개선을 촉구 하고 있다.

독점·수직계열화 저지한 파라마운트 판례
미국의 경우 이런 스크린 독점에 관한 문제는 다소 보기 힘든 편이다. 1996년까지 ‘파라마운트 판례’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라마운트 판례란 1948년 미 정부가 할리우드 메이져 영화사들을 대상으로 제작·배급을 상영과 분리시킨다는 것에 합의한 판례다. 판례에 따라 미국 메이저사들은 극장을 순차적으로 매각했다, 이로 인해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가 사라졌고 독립예술영화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파라마운트 판례’는 1996년 제정된 텔레커뮤니케이션 법으로 인해 완화 되었다. 이는 시장 안정화를 이루어낸 후 경쟁 활성화와 탈규제를 통한 소비자 이익 창출을 목적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수직계열화의 문제는 드물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 영화를 견제해 극장에서 일정시간 이상은 국내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 쿼터제’만 존재할 뿐, 국내영화에 대한 관련법은 전무한 수준이다.
이마저도 일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관객이 몰리는 황금시간대에만 특정 영화로 교체하는 이른바 ‘퐁당퐁당(교차상영)’으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확실한 규제가 없어 거대자본 국내영화가 아니면 스크린에 오르지 조차 못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4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제작·배급한 리틀빅픽쳐스의 엄용훈 대표가 스크린 독점에 대한 불공정을 호소하며 사임을 밝혀 논란이 불거졌던 적이 있다.
당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개봉관 밖에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마저도 조조와 심야시간대에 편중되어 있는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밀어내기’에 당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관련법 재정해 다양성 보장해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의 장성갑 교수는 이러한 스크린 독점 풍조에 대해 “스크린 쿼터제를 국내영화에도 적용해야한다”고 이야기 했다. 상영관에서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등을 일정시간·일정비율 의무적으로 상영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하지만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구분이 모호한 점도 있다”며 미국 파라마운트 판례를 국내에 도입해 영화계의 수직계열화를 원천 차단하는 것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크린 독점 풍조는 지금까지 많은 영화들을 희생시켜왔다. 관람객들에게도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시류에만 맞춘 ‘잘 팔리는 영화’만을 강제했던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장 교수는 “문화는 수익구조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스크린 독점 풍조가 해결된다면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되어 좋은 영화와 새로운 제작사가 탄생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해 현재의 수직계열화 된 산업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곧 영화산업이 성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관객들의 눈높이가 상승하며 영화계에 보다 높은 다양성과 예술성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일부 기업이 관객의 눈을 가리고 타 영화를 밀어내는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젠가 우리나라 영화계는 관객이 등을 돌리는 사태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스크린 독점 및 수직계열화에 대한 확실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장승호 기자  boostme@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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