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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야의 한국의 도시 <5> 한반도 내륙의 관문, 구례백제와 신라의 경계,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관광도시가 되다

   
▲ 구례 병마산(병방산)과 잔수진. 잔수진은 섬진강 권역의 하나로 구례를 고운 모래가 쌓인 분지 도시로 만들었다.
구례에 인간이 거주한 것은 신석기-청동기 시대(BC1500-300년)로 추정된다. 구례는 삼한시대인 BC300년을 전후로 마한(馬韓)에 속하며 남원을 중심으로 섬진강을 무대로 성장했던 ‘고랍국(古臘國)’의 영토였다. 당시 고랍은 ‘꾸라’ 또는 ‘꾸리’로 불렸다. 이에 따라 구례는 ‘물길이 좋으며 기름진 땅’을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인 ‘구렛들’, ‘구레실’, ‘고래실’에 기인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구례는 이후 백제로 흡수되어 ‘구차례(仇次禮縣ㆍ求次禮)’로 불렸다. 이는 서로 원수였던 두 명의 중앙관료들이 이곳에 우연히 함께 정착, 지난날의 원수관계를 풀고 차례로 예를 갖추었다고 하여 ‘구차례(求次禮)’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후 통일신라의 초기까지 ‘구차’로 불리다가 현재의 구례(求禮)로 불리게 된 것은 757년(경덕왕17년) 통일신라 때이다. 당시 구례는 곡성(谷城)에 속하였다.

내륙의 관문이자 국경
구례는 영남과 호남을 나누는 섬진강의 시작점이며, 남해로부터 12km(30리)의 섬진강 계곡을 통과해 바닷배가 올라오는 마지막 포구였다. 구례의 병마산(丙馬山, 현재 병방산(丙方山)) 앞을 흐르는 잔수진(潺水津)은 남원의 순자진과 곡성의 압록진(鴨綠津)을 서북쪽의 상류로 두고, 건너편 문강진(文江津, 현재 문척나루터)을 지나 하동와 광양의 섬진(蟾津)으로 연결됐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구례는 지리산 노고단으로부터 시작되는 한반도 내륙의 관문이었다. 또한 역사 속에서 호남과 영남, 그리고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에 따라 구례의 동쪽 8km에 위치한 토지면의 석주관성(石柱關城)은 마한과 진한, 그리고 백제와 신라의 경계였다. 석주관성은 또한 고려 말기부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까지 왜구 침입의 방어거점이기도 했다.

섬진강이 만든 분지 도시
섬진강은 전북 진안 백운면 마이산ㆍ상초마을의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를 뜻하는 데미샘(더미샘)에서 발원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나간다. 섬진강은 고운 모래의 강으로서 모래가람, 다사강, 사천, 기문화, 두치강으로 불렸다. 구례는 한반도의 남부내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섬진강 본류가 S형으로 방향을 바꾸며 잔잔한 고운 모래의 물결로 흘러나가는 도리형 분지(이하 구례분지) 도시이다. 그래서 구례의 섬진강은 잔수진(潺水津)ㆍ찬수진(鑽燧津)ㆍ거수진(涺水津)이라 불렸다. 구례는 한반도에서 ‘신이 거주하는 신산(神山)’이라는 지리산(智異山)의 입구이기도 하다. 지리산 이란 이름은 아마도 한반도에서 지형적으로 경계를 정의하는 가장 높은 산이라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의미일 것이다.

국내 최초 국립공원의 설립
지리산은 중앙정부가 한국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1967년)함에 따라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당시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의 목적은 국내 관광산업의 개발이었다. 이에 따라 1970-1980년대 지리산의 진입구인 화엄사 계곡이 관광지로 개발되었으며 광역권 국도들이 조성되었다. 
당시 박정희 행정부는 이미 1963년 중앙정부 건설부 산하에 ‘지리산지역 개발위원회’를 설치하여 지리산 국립공원 조성을 추진하였다. 이후 1965년 '공원법' 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며, 1967년 비로소 지리산 국립공원 지정안이 ‘국토건설종합계획 심의회’를 통과하였다. 당시 지리산이 국내 첫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는 화엄사와 연곡사 등 문화재와 함께 남한의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이를 중심으로 전남, 전북, 경남에 관리사무소를 설치해 다양한 관광사업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중앙정부는 1970년대 중반부터 구례와 화엄사를 주변 도시들과 연결하는 국도17, 18, 19를 순차적으로 조성했다. 먼저 구례와 순천-여수를 연결하는 국도17(1976-1978년)과 진도로부터 구례중심부를 지나 화엄사를 연결하는 국도18(1981년)을 조성하고, 이후 남해와 내륙의 원주를 연결하는 국도19(1988년)가 구례와 지리산을 연결했다.

냉천교차로의 조성
전경태 군수(1998-2006년) 때는 구례읍 봉성산 서쪽에 순천완주고속도와 서시천의 냉천교차로가 건설되었으며, 서시천변의 문화시설들을 포함해 구례의 문화 및 교통인프라들이 대거 조성되었다. 또한 지역특색을 갖춘 산수유꽃축제(1999년)와 섬진강변 벚꽃축제(2005년)도 열리고 있다.
봉성산 서쪽 사면에는 전주-남원-구례-순천을 연결하는 순천완주고속도로(2003-2011년)와 구례화엄사IC(2003-2011년)가 조성되었다. 또한 화엄사로 육상교통의 접근을 개선하기 위해 서시천 남쪽구역에 국도17, 국도18, 국도19이 모두 교차하는 ‘냉천교차로(2008년)’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냉천교차로가 구례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어떠한 직접적인 혜택을 주고 있는가는 확실치 않다. 과거 화엄사는 옛 구례성의 동문에서 봉동길을 지나 서시교를 넘어 화엄사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냉천교차로에 의해 주변 광역권의 순천, 남원, 하동 등으로부터 온 방문객들은 직접 구례를 거치지 않고 화엄사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최근 화엄사 계곡과 지리산 관광개발이 구례로부터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광야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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