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남보다 조금 더 잘 그린다는 사실이 여행 중에 내게 많은 재미를 가져다 줬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림으로써 마음을 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말이 통하지 않으면 그림으로 쓱쓱 그려 보이기도 하고 감사의 뜻으로 얼굴 한 장 그려서 내밀면 금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새벽녘 곰빠(Gompa)에서 행해지는 불교 의식을 보러 갔다가 불교 의식이 없다는 말에 뜻밖에 시간이 나서 경내를 여기저기 스케치했다. 같이 이동하며 다니는 여행이기 때문에 가만히 한가로이 앉아 풍경을 그릴 새가 적었는데 이런 시간을 놓칠 수야 없다.
나는 풍경보다 주로 남자 아이들의 얼굴을 많이 그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여자 아이들은 밖을 잘 나다니지 않아서 볼 기회가 적고, 수줍음이 많아 그림을 그릴라 치면 뒤로 ‘쏙’하고 물러서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얼굴은 이 곳 삶의 풍경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아이의 얼굴이 행복할 때 이 곳의 삶에도 행복과 여유가 있다 느껴지고, 아이의 얼굴이 고단할 때 이 곳 삶의 고단함을 엿보게 된다. 
제에 쓰일 버터 양초를 준비하는 동자승 치링과 새벽녘 젊은 엄마의 손을 잡고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온 맑은 소년과 티벳 난민센터에 살고 있는 한참 공놀이를 하고 놀다 잠시 숨 돌리며 유리 구슬을 손에 쥐고 노는 장난끼 가득한 아이, 불전함에 기대어 또랑또랑한 눈과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우리를 보던 동자승… . 아이들의 표정엔 푸른 새벽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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