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번이다. 아니 ‘고고(故故)’ 학번이 더 정확하겠다.

2007학년도 수시 1차 합격으로 동악과 인연을 맺었으니 햇수로 9년이 흘렀다. 아직 학교에 남아있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휴학을 세 학기 했는데 여행, 독서, 자격증 공부, 인턴 등이 이유였다.

특별한 사유 없이 쉬고 싶을 땐 유드림스 휴학 신청란에 ‘휴식’이라고 썼다. 물론 2년의 군휴학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엔 수료생이 됐다. 올 1월에는 학교를 벗어날 뻔했지만 방송국 최종면접에서 두 번을 물 먹었다. 오래도록 동악에 머무르는 아주 평범한 사연이다.

최근 들어 학교가 여러 면에서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프린트 인쇄, 복사기가 그렇다. 입학할 때부터 써온 복사카드가 사라지고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논문이나 인터넷 기사를 인쇄해서 보는 탓에 시스템 변경은 큰 불편으로 다가왔다. 종이가 없거나 카드 결제가 먹통이 되면 스탠딩PC의 줄은 길어졌다. 한 컴퓨터에 20명 넘게 서 있는 경우도 봤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항의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짜증나”, “왜 바꾼 거야” 정도가 다였다. 학교에 전화를 걸거나 “따져야지”라고 말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참다 참다 학교 관련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교직원은 친절하게 변명인지 해명인지 모를 설명을 10분 넘게 해줬다. 긴 통화를 끝내고 든 생각은 ‘학생들이 별로 안 따졌나?’였다. 전화가 폭주했다면 아무리 친절한 교직원도 제풀에 지쳐 대충 답변하고 말았을지 모른다는 추측 때문이다.

사실 학교가 달라졌다기보다는 학생들이 변했다고 느낀 게 더 크다. 비단 복사 문제에 ‘의연한’ 태도 때문만은 아니다. 총장 선출 논란과 관련한 캠퍼스의 움직임이 학생회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아서다. 대자보도 붙어있고,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등에선 무언가 열심히 하는듯한 데 대다수 학생은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 때는’이라는 말이 얼마나 꼰대스러운지는 잘 알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에는 조금 달랐다. 소수 학과를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통폐합하려 했을 때 본관에는 수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였다. 학생회 외에도 여러 학생이 함께했다. 2012년 봄 만해광장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등록금 인하, 학과구조조정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전체학생총회’가 열렸는데 광장에 1700여 명의 학생이 모였다. 농구코트에 그렇게 많은 학생이 모인 광경은 연예인 초청 때를 빼고는 처음이었다. 우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한 시간이었고, 그 경험만으로도 충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캠퍼스가 개인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선배들의 취업난을 보며 학점, 토익, 자격증, 인턴 등에 목마른 게 당연하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과 현실적인 낭만도 찾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고민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깃발을 들어야 한다든지, 광장에 모여야 한다든지 등의 계몽 요구를 하고 싶진 않다.

다만 불만을 다른 이와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 친구와 식사하며 “요즘 문제 있다던데”라고 말하는 정도. 옆 테이블의 누군가가 듣고 ‘정말 문제 있구나’하고 느낀다면 충분하다. 가끔 주변을 돌아볼 마음만 있다면 훌륭한 대학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디 꼰대같은 얘기로 안 들리길, 평범한 고고학번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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