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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6 15:44

동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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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도 언론의 책임 잊지 않았던 ‘동대신문’전쟁과 독재의 검열 속에서도 굴하지 않아 … 4ㆍ19, 5ㆍ18, 6월 민주항쟁 등 역사의 현장과 함께한 65년

   
 
동대신문은 오는 15일 창간 65주년을 맞이한다. 한국전쟁부터 군사독재정권,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도 언론의 자유는 굳건히 지켜져 왔다. 물론 아픔도 많았다. 필화사건으로 제작된 신문이 압수되기도 하고, 독재정부의 탄압에 기사의 일부가 지워진 ‘벽돌신문’으로 발행되기도 했다. 동대신문이 기록한 역사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 진정한 언론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한다.

동대신문은 격변의 시대에 동국인의 귀였고 바른 목소리를 전달하는 언론이었다. 학생 기자들은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론의 책임을 잊지 않았으며 대학언론의 자주성을 지켜왔다. 동대신문은 1947년 ‘동국월보’에서 시작됐다. 창간과 관련된 증언은 있으나 신문이 남아있진 않다. 동대신문 제호로 창간호가 제작된 건 1950년 4월 15일이다. 그렇게 65년간 역사의 발자취를 함께했다.

한국전쟁 참화 속에서도 신문제작

제2호 신문을 조판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신문발행은 멈추지 않았다. 피난지인 부산에서 제작을 이어가갔지만 발간은 2년이 지난 뒤에야 이뤄졌다. 기자들은 ‘피난 학원의 표정과 학생들의 의욕’을 제목으로 6.25전쟁 상황을 기록했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은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와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 숨진 김주열 학생의 시신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약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경무대로 몰려들었다. (제125호 사진, 기사 ‘피 묻은 민권은 내일의 민주주의로 가다’) 본지는 ‘4.19 특집 신문’을 발간했다. 당시 학생기자였던 윤청광 동문은 “시위행렬을 따라다니며 시간별로 메모를 했고 르포기사를 작성했다. 통행금지 때문에 취재를 끝내고 숨어서 학교로 가니 저녁 8시가 됐다”며 그 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제128호 사진, 기사 ‘그대들의 넋은 이 땅에 새로 핀다’) 
4.19 혁명이 일어난지 4년 뒤인 1964년 5월 박정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회담 추진에 반대하는 시위가 들불 번지듯 확산됐다. 기자들은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기사화했다.(제256호)
‘다시 이 거리에 피를 뿌리다니’라는 제목으로 보도기사와 사진 3장을 신문에 실었다. (제256호 사진)
그러나 학교 당국은 관련 사진 3장을 문제 삼아 신문을 압수하고 소각하기에 이른다.

서슬퍼런 군사정권에 잘려나간 기사들

 1980년대는 학생들이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항거의 시대였다. 1980년 5월 6일 본교에서 1,5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민주화 대약진 운동’이 열렸다.
당시 학생들은 ‘계엄령 즉각 해제, 노동3권 보장’의 구호를 외치며 3일간 시위를 벌였다. 동대신문 제764호 1면 기사는 “학생들의 열기가 점차 높아지자 경찰과 학생들 사이에 투석전이 벌어져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30여명의 학생들이 부상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전한다. 대학 역시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학교 내에 계엄사령부에서 파견된 정보기관원들의 사무실이 자리했다. 신문 검열도 훨씬 강하게 이뤄졌다. 기자들은 조판된 신문을 정보장교들에게 검열을 받아야 했다. (제765호 1980년 5월 13일자) 동대신문은 계엄령 하에서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부분이 잘려나가 군데 군데 백지로 발행되었다. 전두환의 ‘전’자만 실려도 발행이 중지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군사정권의 탄압에도 학생들의 민주화 열기는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1986년 2월 22일, 200여명의 학생들이 파쇼헌법 철폐를 요구하며 교내 시위를 벌였다. 제931호 1면 기사는 “파쇼헌법 철폐 범국민 성명운동추진위원장은 한 국가의 헌법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국가의 이익을 실현시키지 못하거나 법 앞의 평등을 보호하지 못할 때에는 마땅히 철폐되거나 개정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1987년 1월 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 조사를 받던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사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시위가 확산되고, 이어 6월 9일에는 시위를 벌이던 연세대생 이한열 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자 시민들이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된다.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故 이한열 군 장례행렬에는 100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참가했다. 당시 동대신문 사진기자는 시청 앞 프라자 호텔 옥상에 올라가 현장의 모습을 담아냈다. 제970호 1면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는 제목의 사진기사가 그것이다.

대학가 민주화 열기, 생생히 기록

대학가의 민주화 운동은 5.18 광주민주항쟁 15주년을 맞아 동맹휴업으로 이어졌다. 1995년 5월 18일, 본교 학생 60명을 포함한 총 3천명의 학생이 탑골공원에 모여 5.18 학살자 처벌 요구 시위를 벌였으며 8월 31일에는 ‘학살자처벌을 위한 동맹휴업 결의대회’가 열렸다. (제1182호 1면 사진)
1년 뒤 8월 연세대에서 열린 제7차 범민족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지면서 한국대학총학생회 연합이 이적규정을 받게 됐다. 당시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에 군림했다. 본지 꼭지 중 ‘소나기’는 시사문제에 대해 학생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받는 기고란이었다. 당시 1210호 소나기에서 ‘무장간첩 침투사건’을 다뤘고 편집장과 관련기자 1명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결국 신문은 약 한 달 동안 발행 연기됐다.
6.29선언 이후 군사독재가 종지부를 찍는 듯 했으나 여전히 범 민주 진영의 분열로 민주화는 더디게 진행됐다.
1999년 11월 14일 여의도 공원에서는 민주노총, 전농, 전국연합, 전국빈민연합 등 51개 사회단체와 노동자, 농민, 학생 3만 명이 참여해 99민중대회가 열렸다. 그들은 생존권 사수, 경제주권수호, 국가보안법 철폐, 노동시간, 단축, 농가부채해결 등을 요구했다. (제1285호 사진)

남북회담과 미선ㆍ효순사건, 그리고 세월호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통일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고조됐다. 통일은 언제나 국민들에게 뜨거운 관심사였다. 본지는 불교종립대학 대표로서 서강대학교와 함께 방북취재를 준비 중에 있었다. 그러나 취재가 성사되지는 못했다. 이에 본지는 특별취재단을 꾸려 ‘2000년 통일 대축전의 의의’라는 기획기사를 작성했다.
2002년 6월 13일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효순, 미선이 사건’이다. 당시 장갑차를 운전했던 마크 워커 병장이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국민들의 반미감정은 고조됐고 광화문에서 촛불시위가 열렸다.
본지 제1349호에 ‘미선·효순의 상처, 가슴 속 ‘반미’로 남다’는 기사와 ‘여중생 압사사건, 100일간의 기록’이 실렸다. 기자가 직접 사고 현장을 찾아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작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295인의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됐다. 사건 1주기를 앞둔 상황에도 9명의 희생자들은 여전히 캄캄한 바다 속에 있다. 작년 9월 기자들은 단식 농성이 벌어지던 광화문 광장을 찾아가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본지는 근대사의 소용돌이에서 언론의 책임을 잊지 않았다. 언론탄압과 검열 속에서도 학생들의 ‘알 권리’를 위해 노력했다. 격동의 시기에 맞서 싸웠던 대학생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바쁘게 돌아갔으며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려고 했다.

창간 65주년, 초유의 발행중지 사태

그러나 최근 65년 창간 이래 처음으로 발행이 중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3월 23일 발행예정이었던 1561호가 발행 중지된 것이다. 검열 속에서 학생기자의 구속이나 배포금지 등의 수난을 겪었지만 신문발행이 중지된 적은 없었다.
65년간 이어온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은 것이다. 이를 두고 본지 기자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학내 곳곳에 대자보를 붙여 언론의 자유를 외쳤다. 기자들의 편집자율권을 침해하고 발행을 중단시켰던 동국미디어센터장 교수는 사퇴했으며 신문은 원래 발행일을 3일이나 넘겨 지난 26일 발행됐다.
언론자유는 기자들이 끝까지 펜을 놓지 않을 때 지킬 수 있다. 65년간의 기자정신을 이어받아 본지는 대학언론의 자주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양지연 기자  yangjiyeon1@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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