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물질만능주의. 바야흐로 명예도, 사랑도, 심지어는 도덕성마저도 돈과의 교환이 가능한 시대다.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한 급격한 삶의 수준 변화는 우리에게 돈이라는 달콤한 매개체와 함께 ‘물질주의’라는 독 또한 안겨다 주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는 ‘돈’에 집착하지 않을 사람이 존재할지 의문이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빛’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물질주의’라는 불안한 다리 위에 세워진 풍요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금방 깨어지는지를 명확히 경고한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부가 최고조에 다다른 1920년대 미국의 모습을 그려내지만, 이와는 반대로 무너져가는 아메리칸드림 또한 묘사하고 있다. 사치와 향락의 팽배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로지 ‘공허함’만이 가득했던 시절을 말이다.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뉴욕 근교 부촌 한가운데 어마어마한 저택을 가졌지만 한 여인만을 기다리는 인물이다. 과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개츠비는 젊은 시절 ‘데이지’를 만나 처음으로 삶의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으로 인해 이별하고 데이지는 억만장자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이후 개츠비는 막대한 재력가가 되어 데이지의 사랑을 다시 얻고자 하지만, 데이지의 선택은 단호했다. 결국 개츠비는 데이지가 일으킨 뺑소니 사고의 누명을 쓰고, 피해자의 남편에게 총을 맞아 삶을 마감한다. 그토록 부유했고 유명 인사들로 북적였던 그의 집이었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쓸쓸함만이 가득하다.
이와 같은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계속해서 개츠비를 ‘예외적인’인물, ‘위대한’인물로 그려내고 있다. 작가가 밝히고자 했던 개츠비의 ‘위대함’은 무엇이었을까. 개츠비를 지켜보던 닉은 개츠비의 장례식이 끝난 후 “결국 개츠비가 다 옳았다”는 말을 남긴다.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삶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이자 ‘낭만적인 준비성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목해볼만한 점은, 책의 핵심이 결코 ‘사랑과 비극’이라는 단순한 주제가 아닌 그 당시 미국 젊은이들의 ‘혼란과 허무’에 있다는 것이다. 어느덧 행복은 돈이 됐으며 성공은 물질적인 것이 됐다. 그러나 이 물질주의가 낳은 결과물, ‘허무주의’의 단면을 ‘위대한 개츠비’는 그리고 있는 것이다.
보통 고전 작품에 대한 관심과 열풍은, 그 시대의 삶에서 결핍된 가치를 반영한다. 현대에도 계속해서 잊히지 않고 재조명되고 있는 개츠비 열풍. 이는 우리가 잊고 지낸 가치에 대해 되돌아보게 해준다. 단순히 더 풍요롭고 부유한 삶만을 목적으로 살아갔던 작중 인물들, 그리고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텅 비어있는 그들의 실상은 현실의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꼭 닮아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굳은 신념만이 자신의 안정임을 알고 있는 존재, ‘개츠비’는 우리에게 여전히 무언의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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