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9 선봉에 섰던 자랑스러운 동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다

 

4.19혁명은 우리대학이 선봉에 서서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자랑스러운 학생 혁명이었다. 4.19혁명 55주년를 맞아 4.19혁명 동지회 라동영(불교학과 59입학, 80세)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라동영 회장은 선열이 낭자했던 그 당시를 회상하며 3.15 부정선거에 대항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그 날을 기억했다.

어깨동무하고 모두가 함께

라동영 동문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라 동문은 “동국대가 가장 앞서서 혁명을 이끌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동국대가 주도적으로 다른 대학교과 논의하여 혁명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그는 “혁명 당일, 학우들과 아침부터 강의실, 도서관 등 학생들이 있는 곳을 하나하나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라 동문과 학우들의 노력에 2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새겨진 비석 앞에 모였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한순간에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재선거로 민주화가 되어야 한다’는 한마디에 모두 나왔다”고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55년 전 그 날로 돌아간 듯 결연했다. 라 동문은 당시 총장이었던 백성욱 총장이 학생들에게 ‘젊은 패기로 데모하러 나가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분이 학생이니까 절대 몸을 다치지 말고 의견을 충분히 개진한 다음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업에 열중하라’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학생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학림관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라 동문은 “그 기세에 천지가 진동하는 듯 했다”라며 당시의 감상을 되짚었다.

시작된 경찰의 유혈진압

학생들이 밀려 나오자 경찰들의 유혈진압이 시작되었다. 라 동문은 “충무로 쪽으로 내려가는 문으로 학생들이 나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중부 경찰서 경찰관들이 진압을 시작했다”라며 치열했던 당시를 설명했다. 그는 “학생들이 밀어붙이자 결국 경찰들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학생들은 을지로를 거쳐 해무청(舊 해양수산부의 전신)에 도달했다”라고 말했다. 라 동문은 “해무청에서 바리케이트를 쳐놓은 경찰과의 마찰이 다시 일어났으나 굴하지 않고 하수도관을 굴리며 해무청을 뚫었다. 끝내 경무대(現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라고 설명했다.
라 동문이 기억하는 경무대의 모습은 철옹성과 같았다. 그는 “경무대 앞에서 소방차로 물대포를 쏴도 학생들이 후퇴하지 않자 공포탄을 쏘았고 이내 실탄이 날아왔다”며 당시를 묘사했다. 라 동문은 “우리가 맨 앞에 있었기 때문에 첫 사상자는 우리학교의 노희두 학우였다. 우리는 총에 맞지 않기 위해 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기어갔다”라며 악착같이 버티던 그 날을 회상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정의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는데

오후 2시 경 우리대학 학생들은 청와대에서 시내로 나왔다. 라 동문은 “온 시내가 시위의 물결이었다”라며 당시를 증언했다.
라 동문은 “그 다음 날부터 초등학생들도 나와 평화적인 시위를 이어나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특히 “동국대는 하루 동안 중부경찰서 주변의 치안을 맡아 학생들이 자발적인 치안유지 활동을 했다”며 계엄령이 선포된 후 잠시 동안 학생들이 경찰을 대신해 치안 유지에 힘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시위를 하는 것이지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라며 4.19 정신을 환기했다.
라 동문은 학생들이 이처럼 뜨겁게 시위에 나설 수 있었던 원동력을 ‘정의를 추구하는 학생정신’에서 찾았다. 그는 “정의롭다면, 그리고 옳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버릴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시위 중 다치거나 사망한 학생들에 대해 묻자 라 동문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라 동문은 “말도 못한다”며 당시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옆에서 피흘리며 쓰러지는 것을 보니 무엇도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4.19정신을 계속 이어나가길

라 동문과 4.19혁명 동지회는 학림관 쪽 후문 입구에 4.19혁명 표지석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표지석을 보며 4.19정신을 잃지 않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라 동문은 “학생신분일 때는 학업에 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 생활을 할 때는 정의와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행동을 하고 친애와 협력의 기운이 가득한 발전적 사회 건설에 선두에 서라”며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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