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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야 교수의 한국의 도시 <4> 안개가 찾아오는 도시, 순천②역사적 위기를 기회로 바꾼 순천, 생태공원으로 발돋움하다

   
▲ 순천 남산에서 바라본 순천 동천과 중앙동. 중앙동은 일본인들의 초기 거주지였다.
일제강점기는 순천의 모습을 큰 폭으로 흔들어 놓았다. 1909년을 전후로 이병휘 순천 군수의 주도 하에 순천부읍성의 성벽철거가 진행되었으며, 1915년에 조선총독부는 이미 순천의 토지조사사업도 완료하였다. 이후 1930년 광여철도선 등이 개통되면서 도시가 확장되었고, 인구도 대폭 상승했다.

순천부읍성 해체와 신작로 조성
1910-1930년대, 순천은 대규모의 물리적 변화를 겪었다. 특히 중심부인 소안면과 장평면이 통합되어 순천면(1911년)이 되었고, 이후 순천읍(1931년), 순천부(1949년), 순천시(1949년)로 지속적인 행정개편이 진행되었다.
먼저 순천부읍성의 성벽과 성문이 순차적으로 해체되었다. 이와 함께 인접 도시들을 연결하는 신작로들이 조성되었으며, 새로 조성된 중앙로를 따라 격자형 도로들이 생겨 도시 전체가 빠르게 성장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09년부터 5개년 도로조성계획을 세워 당시 예산 100만원으로 광주-여수의 신작로, 전주-순천의 신작로, 순천-여수의 신작로 등 주요 7개 도로들을 기존의 역로들을 중심으로 조성하였다.
특히 1920-1930년대에는 영광-광주-담양-곡성-구례-순천의 도로와 ‘폭도도로’로 불렸던 총 길이 164 km의 남연안선(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여수-하동) 도로가 조성되었다. 남연안선 도로는 “지방의 교통을 개발하고, 폭도귀순자에 생업을 부여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발표되었으나, 실제는 전라도의 의병제압을 목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1930년을 전후로 광여철도선이 조성되면서 순천은 철도교통의 중심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순천은 순천평야와 주변지로부터 모인 농산물 집산지로 성장했으며, 이미 1920년대 말 인구가 10만 명에 육박했다. 이에 순천은 광여철도선의 종점이자 항구인 여수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귀환동포의 수용과 대홍수
1945년 해방 후, 순천의 성장은 무엇보다 귀환동포의 수용과 한국전쟁 피난민의 수용으로 시작되었다. 실제로 순천에는 한국전쟁(1950-1953년)을 전후로 22,000명의 귀환동포와 피난민이 유입되었다. 이들 귀환동포들은 현재의 순천고 자리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조성하였다. 물론 순천은 1948년 ‘여수ㆍ순천사건’ 같은 사회적 불안을 겪기도 했다.
이후 순천은 1962년 8월 28일 태풍 사라호로 인한 순천대수해를 입었으며, 곧 수해복구를 목적으로 대규모의 도시재개발이 진행되었다. 당시 수해는 순천 시내의 2/3를 완전히 침수시켰으며 동천의 흙제방과 서면 산성저수지 둑이 붕괴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또한 순천대수해의 피해로 사망자 224명과 이재민 14,000여 명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는 1962-1963년 순천지구 수해복구사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가재건회의를 통해 군대를 수해복구에 투입하여 4개월 동안 수해 피해지를 복구하고 동천 제방을 재조성했다. 이후 중앙정부는 제1토지구획정리(1962-1966년), 제2토지구획정리(1966년), 그리고 1970년대에 제3토지구획정리를 진행하여 수해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거환경재정비와 도시재개발 및 도시 재정비를 진행하였다.

고속도로와 순천의 공업화·도시화
1960년대, 다른 도시들이 공업도시화 된 것과 달리 순천은 농촌도시의 생산구조와 인구변화를 그대로 유지해 온 독특한 도시이다. 1960년대 말부터 철도와 국도로 순천과 주변지역들이 연결되기 시작했으나 이들은 순천의 공업화에 기여하지 못했다. 새롭게 조성될 수 있었던 대형 공업단지들이 대형 항구를 갖춘 광양과 여수에 조성된 탓이다.
순천을 공업화로 유도한 것은 고속도로이다. 먼저 천안-순천을 연결하는 호남고속도로(1973년)가, 그리고 순천-부산을 연결하는 남해고속도로(1973년)가 조성되었다. 남쪽에는 목포-광양 고속도로(2012년)와 순천-완주고속도로(2011년)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와 연계된 공업산업단지가 조성되는 것은 그 이후다.
순천의 현대적 주거지들은 한국의 다른 도시들처럼 중앙정부가 주도한 일련의 토지개발과 매각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이에 민간건설사들이 순천의 토지들을 매입하여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해 분양하였다. 아파트 단지개발이 중점이 된 순천의 확장은 1985년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 지방자치단체 시대를 지나면서 광양과 여수 사이의 동순천에 집중되었다.

자연생태공원으로서의 순천
조충훈 순천시장(2002-2005년)은 2003년 순천만을 습지보존지역으로 지정하여 갈대밭과 S자형 수로 등의 습지생태환경을 관리해 왔다. 이후 노관규 시장(2006-2011년)의 주도로 순천시 중장기 발전계획(희망순천2020)이 수립되었고 순천만(順天灣)의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순천은 자연친화적인 도시로 완성되는 계기를 가진 듯하다.
특히 2006년 연안습지로는 국내 최초로 순천만이 ‘람사르 협약’에 등록되었다. 또한 시민천문대, 조각공원, 복합문학관, 낭트공원(빨래배) 등이 조성되었으며 2008년 풍덕교로부터 동천을 따라 대대포구까지를 연결하는 8km 동천변 무진길도 조성되었다. 
순천만 갈대밭 조성사업의 시기를 고려하면, 순천이 불과 그로부터 5년 만에 한국 최고의 관광지로 지도에 등장한 사실은 기적과도 같다.

   
▲ 순천만에서 바라본 동천. 갈대밭 조성사업 5년만에 한국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한광야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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