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식 교육학과 교수
산업구조의 재편과 경제 양극화로 현재 대졸자의 취업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더욱이 대졸자들에게 매력적인 ‘좋은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고용시장에서의 양극화도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한국고용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자 30% 이상이 전공과 일자리가 일치하지 않는다(mismatch)고 답했다. 취업률에 목을 매는 대학에서는 모든 전공을 경영학으로 바꾸면 취업문제는 해결된다는 자조 섞인 말도 들린다. 이렇게 인문사회과학 방면의 순수학문 전공자들은 취업 전선에서 낙오자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특별히 대두된 것이라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던 90년대 초 대부분 기업들은 이공계 전문 인력이 필요한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 전공에 구분 없이 인력을 충원했다. 당시 인문사회 전공이던 필자의 동기나 선배들은 심지어 상장기업을 일구며 성공을 구가하고 있다. 기업들은 대학에 특별한 주문을 하지 않았다. 어느 유명한 공학도 출신의 전자업계 CEO는, ‘대학은 대학 본연의 교육목표에 입각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제 시장이 대학을 장악했다. 지금의 고용방식이 올바르다는 주장은 반쪽 진리이다. 시대정신은 가치의 우위가 시대에 따라 바뀐다는 말이다. 시장의 헤게모니가 최고조에 달한 현 시대 상황에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음에 주목한다.
기업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찾는다. 심지어 자신들이 만든 교육과정을 대학에 던져주고 그런 식으로 배출해 달라고 한다.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계약학과는 그 전형적인 예이다. 여기서 커리큘럼은 주로 기능적인 훈련이나 현장 적응을 겨냥하는 실용적 지식 습득에 초점을 둔다.
인문학적 소양이나 융·복합적 지식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길러진 인력의 운명은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정작 기업체는 당장 고용한 인력을 단기간 써먹고 내뱉는다. 결국 기업체는 인력교육에 드는 비용을 대학에 전가하는 셈이다. 즉각적인 투입과 소진시킬 수 있는 역량의 총량 높이기! 이것이 목표일뿐이다.
그 결과 노동의 주체는 기업체의 시스템에 편입되어 주체적으로 역량을 발휘하기보단 흐름에 끌려 다닌다. 사회학자 세네트(R. Sennett)가 이 시대의 인간상을 지칭한 용어인 ‘유연한 인간(flexible man)’은 기업의 작동방식에 굴복당한 채 노동의 생명을 하루하루 연명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포기해야만 하는 직업인(erosion of character)을 뜻한다.
시장이 대학을 지배함으로써 대학교육의 목표와 방향도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대학교육을 왜곡하고 있는 정황들이 거의 매일 목격된다. 이렇게 자본은 자기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각종 이데올로기를 동원하면서 대학을 옥죄고 있다. 취업률이 대학의 책무성이 되고 기업가적 인간상이 대학의 교육목표로 버젓이 등장한다. 대학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 과제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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