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숙 행정학과 02졸

저는 02년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여러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점역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서울의 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점역사란 인쇄물에 접근이 불가능한 시각장애인을 위해 인쇄된 책을 점자도서나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는 대체형태로 제작하는 사람입니다.
점자는 이 세상의 모든 글자를 점 6개만으로 만들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각종의 글씨체, 크고 작은 글자크기, 오색찬란한 글자색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손가락 한 마디에서만 읽을 수 있는 6개의 점만으로 점자는 이루어집니다. 이 묘한 매력에 빠져 어느새 이곳에 근무한 지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장애인을 만나 볼 기회가 흔치 않았습니다. 장애인은 그저 사회적 약자라는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저는 장애학우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방관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인터넷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우연히 본 복지관 관계자의 전화 한통화로 이곳과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저의 능력을 시각장애인을 위해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일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이곳은 특별한 공간입니다. 우리 사회의 그 어느 곳보다 아픔, 좌절, 역경, 고뇌가 있는 곳인 동시에 희망, 기쁨, 행복, 승리가 있는 우리 삶의 어둠과 빛이 극렬하게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와 장애인이 여러분들에게는 특별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13년을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장애인도 그냥 저희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이라는 사실입니다. 장애에 대해 무지했던 저에게는 그저 시각장애인은 같이 근무하는 직장상사, 동료였으며, 사물놀이를 배우러 오는 아저씨, 아주머니였고, 점자나 컴퓨터를 배우러 오는 학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장애인을 만나면 특별하게 대해줘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할지도 모릅니다. 무언가 도와줘야 할 것 같고, 왠지 대하기 어려울 것 같고, 나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상처를 입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모른 척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한 명일 뿐입니다. 다만 이들에게는 인쇄된 책 대신 점자책이 필요하고, 안경 대신 흰 지팡이가 필요하고, 지도 대신 점자 블럭이 필요한 우리들의 평범한 이웃입니다.
지금이라도 장애인을 만난다며 두려워하지 마시고 피하지 마십시오. 거리에서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짐을 들고 갈 때 “들어드릴까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 가벼운 인정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길 권합니다.
장애인을 만나면 무언가 해줘야겠다는 앞서가는 의욕으로 과잉친절을 베풀거나, 막연한 두려움에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장애인을 모른 척 외면하지 마시고 “도와드릴까요?”라는 밝은 한마디로 우리의 “평범한 이웃”에게 다가갈 수 있는 동대인이 되길 희망합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