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형 영화영상학과 교수

디지털 시대가 되었으니 이제 극장은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말의 일리는 있다. 극장소비가 줄 수는 있다는 말로 들린다. 대세가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디지털은 고유의 문화적 성향을 지워버리는 성격이 있다. 디지털의 장점은 융합과 복합의 의미를 극대화시키는 유용함이다. 그 장점과 대세를 거부할 명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영화를 ‘시청’한다. 다운 받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보거나 IPTV로 영화를 본다. 그 현상만을 보면 극장은 금방 사라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말에 극장을 가보면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걸 볼 수 있다. 주중에도 여성관객들이나 어르신들이 엄청 많이 몰려 있다. 백화점의 문화센터 동호회원들도 있고,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생, 동창생들끼리 모여 영화를 보러 온 것이다.
아무리 디지털의 첨단을 걸어도 극장이 절대 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다. 사람이 만나는 공간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가 좋고 스마트폰이 좋아도 젊은 남녀가 손 잡고 키스하는 것을 대체할 수 는 없다. 젊은 이들이 있고, 그들이 데이트를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한 극장은 없어질 수 없다. 오히려 더 잘 되면 잘 되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사라져선 안 된다.


데이트 장소로서 극장은 최고의 명소이기 때문이다. 첫째, 가격이 가장 싸다. 최근 극장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외국의 기준에 비하면 더 올라야 한다. 다른 물가들에 비하면 싼 오락거리다. 그게 한국의 극장이 대중 서민들에게 여전히 환영받는 이유중의 하나다. 돈 없는 젊은이들이 반나절을 데이트하며 즐길 수 있는 장소로서 극장은 으뜸이다.


스마트폰으로 자주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 수는 있어도, 영화를 보며 스킨쉽을 하는 극장의 기쁨을 어떻게 능가하랴. 그래서 극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술이 아무리 시대를 리드해가도 인간의 아날로그적 본질을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극장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존재할 것이다.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중년이나 어르신들은 또 어떤가. 젊은 날을 회고할 수 있는 적합한 장소가 극장이다. 과거 ‘써니’에서부터 최근 ‘수상한 그녀’, ‘국제시장’, ‘쎄시봉’, ‘강남1970’ 등 많은 영화들이 복고 취향으로 어른신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영화관객은 점점 넓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이제 문제는 극장의 변화이다. 극장의 존립은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내용이나 관객소비자에 대한 극장의 서비스, 국가의 관심 등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은 극장을 원하는데 영화인, 극장, 정책의 배려가 없다면 관객들이 외면할 것이고, 그 이유야 말로 극장이 사멸하게 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관객 소비자를 극장의 진정한 주인으로 대접해야 한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영화인, 극장, 정부 세 주체가 관객소비자로 하여금 얼마나 더 오래 동안 극장을 사랑하게 만들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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