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축구경기가 끝나고 숨을 헐떡이며 브이!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미이라’ 시리즈를 나 또한 무섭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 나오는 그 낯설면서도 신비로운 풍경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그 호기심을 극대화 시켜주는 미이라의 존재 역시 어린 나의 기억 속에 잊지 못할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학교에서 잠깐 배웠던 피라미드와 미이라는 그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였지만, 영화를 본 순간 그 상상이 현실이 된 것 같아 밤에 잠이 들 때면 이불 속에 숨어 몰래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미이라’

이 여행에서 특히 기대하고 있던 나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집트였다. 어릴 적 보았던 ‘미이라’의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었던 걸까? 그 때부터 막연하지만 진득하게도 이집트에 가고 싶은 마음을 키워왔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 바라본 이집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유적지의 나라였다. 위성에서도 그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는 기자 피라미드하며 손톱, 눈꺼풀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미이라, 이집트의 귀족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숨겨진 무덤들의 성전, 왕가의 계곡까지 그 무엇 하나 내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없었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옛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정말이지 경이로움 그 자체의 유적들을 보니 내가 정말 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하루하루였다.
어느 날은 수도에 있는 카이로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집트의 유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 넓은 박물관이 빽빽하게 차있는데, 그 중에서도 추가 입장료를 더 지불하면 이집트 왕가의 미이라를 모아놓은 특별 전시관에 들어갈 수 있다. 어릴 적 ‘미이라’ 영화를 너무 감동 깊게 보았던 난 당연히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입장했고 역시나 그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미이라 전시관에서 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미이라에 정신이 팔린 지 10분이 좀 넘었을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이 전시실에 살아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경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심지어 이곳을 지키고 있던 관리자마저도 없어진 것이 아닌가.
다시 고개를 내려 보니 내 주위에 누워있는 미이라들이 더 생생하게 보였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서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릴 적 보았던 ‘미이라’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마치 내 주위를 둘러싼 미이라들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상상에 지배되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전에 관리인이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다행히 내 심장은 진정이 되었지만 표정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는지 관리인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기억이 난다.
“Don’t leave me alone.

잊을 수 없는 그들, 친구
이집트엔 이런 유적지와 유물들만 가득 존재하는가? 아니다. 여기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 또한 참 인상적인 곳이다. 어디든 여행자가 많이 가는 곳은 그에 따른 사기꾼들이 참 많다. 이집트 또한 연간 가장 많은 배낭 여행자가 방문하는 곳으로, 여행자를 상대로 한 사기가 참 많이 존재한다. 그럼 이렇게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적어도 내가 만났던 친구들은 나를 ‘형제’라고 불러주었다.
이집트에는 알렉산드리아라는 해변 도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를 가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는 곳으로 지중해의 파란 빛이 참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마을을 둘러보고 도서관도 구경하면서 정신없이 걸어 다녔다. 더운 날씨에 걷다보니 목이 말라와 숙소 근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카페 내부 사진을 찍다가 한 친구와 눈이 마주쳤고 그가 갑자기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어줬는데, 그 사진 한 장으로 우린 친구가 됐다.
사진에 나와 있듯이 참 재밌는 친구인데, 덕분에 그 친구의 친구들과도 친구가 됐다. 카메라가 맺어준 이 인연들은 알렉산드리아 대학교에서 각각 법학과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었다. 같은 대학생 신분인 걸 알게 되니 서로 더 친해질 수 있었고 또 영어가 통해 우린 이후로도 여러 날을 만나 같이 놀게 되는 사이가 되었다.
같이 맛집도 다니고 유명한 유적지도 다녀오고 심지어 대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도 같이 했다. 축구를 너무 열심히 했던 어떤 날은 운동이 끝난 뒤 맛집을 가기로 했고 난 당연히 아~ 치맥을 먹으러 가겠구나 싶었는데, 기대를 가득 안고 이들을 따라 찾아간 맛 집은, 생과일주스 전문점이었다.
아차 싶었다. 이곳은 중동이다. 이슬람 문화가 뿌리내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는, 역시나 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맥주를 마시는 상상을 했던 내가 도리어 미안해지는 상황이었다. 사실 맥주가 너무 간절했지만 알렉산드리아 최고 맛 집 과일주스로 만족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무언가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도 이 친구들은 날 배웅해줬다. 고속터미널이 여행자가 찾아가기엔 꽤 힘든 위치에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같이 봉고차 택시를 잡아주고(같이 타고 가면서 자기들이 돈도 내주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다가 버스에 오르는 나에게 핸드폰 번호가 적힌 종이를 주면서 무슨 일 있으면 꼭 여기로 연락하라고 해주었다.
걱정 말라면서 멋있는 척 버스에 올랐지만 이미 내 눈엔 눈물이 고여 버렸다. 날 배웅해주던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외국인 친구들과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수 있다니,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친구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집트는 선물이다
이집트는 나에게 많은 선물을 해준 나라이다. 어릴 적 꿈과 그 상상을 현실로 보여준 곳이기도 하고 잊지 못할 친구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준 나라이다.
물론 사기꾼들의 정신없는 술수에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힘든 상황에 처해질수록 소중한 것들을 더 잘 찾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집트는 나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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