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열 미술학부 교수
그렇다면 가섭은 왜 꽃을 보고 웃었을까? 우리는 여기에 의문을 가져보지 않을 수 없다. 꽃의 형상이나 색깔이 아름다워서? 아니면 향기가 그윽해서? 아니다.
가섭은 있는 그대로의 꽃을 보고 꽃과 하나가 되어 꽃의 비밀, 우주의 신비를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이며 가섭은 이 ‘깨달음’을 통해 ‘생명의 진제(眞諦)’,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이나 예술에서의 ‘미적 인식’은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인생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아주 적합한 방법 혹은 방식이다. 이는 다 같이 인간 자체가 갖추고 있는 초월적인 감성역량을 발휘하여 세계 및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깨달음이나 아름다움은 인간이 우주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 우주와 더불어 하나로 융합하고 자연스럽게 주체와 객체의 분리 혹은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는 대상의 진실을 보여주려 함으로 논리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 개념, 판단, 추리 등의 단계를 뛰어넘는다. 여기에는 사물자체에 직접 진입하는 ‘직관의 사고’가 요구되며 이는 또한 지금까지 추구하던 바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실체를 인지하고 관찰하는 방법이 바로‘깨달음’을 위한 ‘선(禪)적 사유’이며 이를 또한 의지적 혹은 ‘창의성’의 방법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누구나 ‘깨달음’,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부처가 되고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이처럼 위대한 ‘불성’, ‘창의성’을 얼마나 발현하고 있는가?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창의성’을 요구하고 있다. 가섭이 꽃을 보고 웃은 뜻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이것을 찾아 쓴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김대열
미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