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
고약해는 세종대왕의 신하였는데, 세종대왕과 의견이 맞지 않을 때에는 세종을 노려봤을 뿐 아니라, 대화 도중 자리를 떠나는 등 매우 무례한 행동을 자주 했던 것으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세종대왕도 그를 못 마땅하게 여겨서 말을 잘 안 듣는 신하에게는 ‘고약해 같은 놈’이라고 했고 이것이 현재의 ‘고약한 놈’ 같은 표현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런데, 세종은 그렇게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을 대사헌이라는 벼슬까지 시켜 주었는데, 대사헌이란 관료들의 잘못과 풍속을 단속하는 감찰기관의 수장에 해당되는 고위관료이다. 자신에게 반대의견을 자주 제시하는 사람을 높은 자리에 둠으로써 다른 신하들에게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 만 보더라도 세종대왕은 대한민국 역사상 소통을 제일 잘 했던 리더임에 틀림없다.
내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교수가 되었을 때 처음 마주쳤던 장벽은 학생들과의 소통, 특히 강의실 내에서 학생들의 질문과 의견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신임교수 때에는 학생들과 거리를 두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한 결과로 내 연구실에 학생들이 밤 10시쯤 찾아와 커피를 한 잔 같이하자고 해서 커피를 대접해 가면서 학생의 고민거리를 한 시간 이상 들어주었던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학생들이 나하고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그런 학생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강의실 안에서 학생들의 생각을 말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매 학기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이다. 아마도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수동적인 태도로 수업에 임하는 이유는 겸손, 배려 등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사고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도 생각해 본다. 전 세계의 0.2%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노벨상 수상자의 25%를 차지한다는 사실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강의실 내에서 학생들의 태도이다. 유태인들에게는 후츠파(뻔뻔함, 담대함, 저돌성, 무례함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정신이라는 것이 있는데, 강의시간에도 조금이라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질문하고,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업 중에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주로 ‘조용히 하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고, 미국은 ‘Do you understand?’, 유태인들의 강의실에서는 ‘What do you think?’ 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하니 자기 생각을 강의실에서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지난 학기에는 대학에서 강의한 지 24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강의하는 두 강좌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외워서 강의 도중에 이름을 불러 가면서 질문과 토론을 유도하였지만, 강의 평가는 전 년도에 비해서 오히려 좋지 않았다. 나에게는 학생님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지만, 내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고약해 같은 학생이 자주 나타나 주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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