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욱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대학시절을 돌이켜보면, 적어도 나는 수업시간보다 친구들과의 스터디에서 더 많은 걸 배웠던 것 같다. 물론 좋은 강의들도 있었지만, 소수가 모여 스스로 주도하고 참여하는 공부가 여러 면에서 월등한 것은 사실이다. 이어지는 술자리 역시 수업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를 메워주었다. 그러니 대학시절을 이렇게 정의해도 좋을 것 같다. ‘좋은 친구 선후배들과 보내는 한 시절’이라고 말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친구 중에 게르숌 숄렘이라는 사람이 있다. 숄렘이 쓴 ‘한 우정의 역사: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는 가장 가까이서 벤야민을 기록한 뛰어난 전기문학으로 꼽힌다. 숄렘은 유대신학자로 카발리즘 등 유대신비주의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1915년, 갓 스물 살이 넘은 젊은 벤야민은 게르숌 숄렘을 만나 밤새 논쟁하며 평생의 우정을 다진다. 벤야민의 사유에 나타난 신비주의적 메시아니즘은 많은 부분 숄렘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벤야민의 인생에는 빼놓을 수 없는 친구가 또 한 명 있다. 아샤 라시스. 벤야민의 산문집 ‘일방통행로’는 그의 연인이자 친구였던 아샤 라시스에게 헌정되어 있다. 그녀는 라트비아 출신의 연극 연출가로 헌신적인 프롤레타리아 운동가였다. 그녀를 알게 된 후 벤야민의 사유는 카발라적 신비주의와 모더니티에 대한 탐구에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성을 수혈받게 된다.
한때 벤야민이 소비에트 연방을 방문해 마야콥스키나 메이에르홀드 같은 예술가들을 만났던 것도 아샤 라시스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자 베를린의 보수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벤야민이 진보적 사유로 나아가게 된 데는 아샤 라시스의 역할이 컸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유대신학자 게르숌 숄렘과의 대화에서는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아샤 라시스의 관점에서 말하고, 아샤 라시스와의 대화에서는 신학자 게르숌 숄렘의 시선으로 말하는 벤야민을 말이다. 이 두 개의 벤야민은 다른 벤야민이 아니다. 두 시선은 벤야민의 내면에서 하나의 역동적 통일체를 이룬다. 구원과 혁명이 조우하는 벤야민의 사유는 두 친구를 넘어 새로운 영역에 닿았다고 할 수 있다. ‘시차(parallax)’는 두 개의 시선이 하나로 종합되지 않으면서 역동적으로 교차 공존하는 상태이다. 하나의 시선만으로는 대상의 진실에 닿지 못한다. 차이와 이질성이 없으면 진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좋은 친구 선후배란 그런 것일 듯하다. 나와 진심을 나누되, 나와는 다른 시선 다른 감각으로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존재. 그 차이를 통해 나를 만들어주는 이들. 진짜 우정과 사랑은 빈틈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화해불가능한 ‘둘’의 차이를 존중하고 창조적으로 대면할 때 가능하다. 벤야민이 나치를 피해 스페인의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사망했을 때, 그 유해를 거둔 것은 젊은 시절의 논쟁적 친구 게르숌 숄렘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 대화를 나눈 곳은 베를린의 한 대학 도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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