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2004년에 개봉한 켄 로치 감독의 ‘다정한 키스(Ae Fond Kiss)’는 제목과 달리 심각한 영화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카심은 파키스탄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이민 2세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이슬람교도로 카심을 사촌과 결혼시키려 한다. 그렇지만 카심은 우연히 만난 가톨릭계 고등학교 기간제 음악교사인 백인 처녀 르와진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자 큰 파장이 일어난다. 부모님은 사촌과의 결혼을 파기하면 부모가 쌓아온 명예가 무너진다며 극구 반대한다. 르와진도 이교도인 카심과 동거문제로 어렵게 찾아온 정직전환의 기회가 물 건너간다.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진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젊은이들의 사랑이다. 두 연인은 다시 만나 다정한 키스를 나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켄 로치의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저들의 사랑이 성공할지에 대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두 사람을 둘러싼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갈등은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다정한 키스’가 역설적이게도 ‘불안한 키스’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몇 장면만 바꾸면 한국사회의 문제와 연결된다. 거리에 나가면 이주노동자, 유학생, 결혼이주여성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미 국내거주 외국인이 100만 명이 넘었다. 서울은 더 이상 단일 민족과 문화를 내세울 수 없는 국제적 도시다. 이에 반해 이들에 대한 문화적 편견은 후진국 수준이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과연 해결책은 없는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 토론 잘하는 카트야나(迦?延)라는 사람이 있었다. 서북인도 전도를 위해 마투라국을 찾아갔는데 국왕은 종교와 피부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했다. 카트야나는 ‘세상의 관습은 틀린 생각이다. 백인이라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흑인도 착한 일을 하면 상을 주는 것이 맞다’면서 사성평등을 강조했다(잡아함 마투라경). 인종이나 종교 때문에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정답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양 사람을 만나면 주눅 들고 동남아 사람을 만나면 으스대는 한국인들의 이중성은 돌아볼수록 부끄럽다. 낡은 관습과 불합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온 것은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주인이 되는 미래에는 ‘다정한 키스’가 더 달콤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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