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으로 새로운 도전 시작하는 민병록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

▲ 민병록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

“창조의 샘이 마르지않는 사람이 되길”

32년간 우리대학 강단에 섰던 영화영상제작학과 민병록 교수가 올해부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오랜 시간동안 강연을 했던 만큼 민 교수는 우리대학과 한국 영화에 한 부분이 된 제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영화에 대한 갈증으로 영상자료 수집

민 교수는 유년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의 엄혹한 사회 분위기에서 다양한 영화를 접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후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오픈 시티’, ‘제 3의 사나이’ 등의 영화를 접하며 유년시절의 갈증을 해결했다. 민 교수는 “뉴욕 한복판에 영화도서관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시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전문적인 영상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전문적인 영화 도서관을 세우고자 마음먹었다. 민 교수는 일본과 미국에 방문할 때마다 영상자료들을 모아 한국으로 가져왔다. 민 교수는 “세관에서 허락하는 양보다 많은 양을 가져오느라 첩보 영화를 찍었다”고 말했다. 현재 민 교수는 전주에 최초로 영화도서관을 세웠다.

동국대는 나에게 ‘샘터’와 같아

민 교수는 “강의를 하던 80년대는 정부차원에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대학에서는 시청각 자료로 수업할 수 있어서 가르침에 대한 목마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배우 최민식, 강제규 감독, 유하 감독 등 자신의 강단을 오갔던 열정 많은 제자들을 언급하며 “제자들이 한국 영화의 한 부분을 장식하고 있어 밥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말했다. 계속 질문하고 방학마다 연기 훈련을 하던 제자들을 말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민 교수가 영상대학원장으로 있을 때 교육부로부터 약 20억 원의 지원을 4년간 받아 영상대학원 특성화 사업이 이루어졌다. 지원금은 학생들의 영화제작과 기자재 확보, 장학금 등으로 쓰이며 영화영상제작학과의 입지가 높아졌다.         

열정과 자기철학으로 살아야

민 교수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 중이다. 그는 원래 영화감독을 하고자 유학길에 올랐으나 유학파 감독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80년대 충무로 분위기로 꿈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교수 일을 하고 있을 때도 몇 번의 영화제작 제의가 들어왔지만 영화 내용에 대한 정부의 압박과 흥행에 대한 고민으로 선뜻 영화감독의 길을 걷지 못했다. 그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영화감독으로 데뷔를 준비한다. 민 교수는 “학생들이 열정과 자기철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열정과 자기철학에 깊이 있게 파고들어 창조의 샘이 마르지 않게 해야 한다. 샘에 항상 물이 차게 해, 흘러 지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병록 교수 약력
전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위원장,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원장, △한국영화학회 회장 역임.
현 △제22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전주 영화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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