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풍같은 절벽과 우거진 숲이 지상절경

 

奇岩(기암)과 洞窟(동굴)의 섬 ‘울릉도’
평풍같은 絶壁(절벽)과 우거진 숲이 地上絶景(지상절경)
오징어회 一味(일미) 水力發電所(수력발전소)도 있는 五多島(오다도)
金信雄(김신웅)
 
 
學窓時節(학창시절)의 여행은 더없는 꿈이요 낭만이다. 그리고 방학은 여행의 “골든·시즌” 그래서 여기 東海(동해)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신비로운 전설의 섬“울릉도” 紀行記(기행기)를 소개해 본다.
 
 
國民學校(초등학교) 社會生活(사회생활) 時間(시간)에 우리나라 地圖(지도)를 그리다 그만 鬱陵島(울릉도)를 빠뜨려서 단단히 꾸지람을 들은 ‘에피소드’까지 갖고 있는 鬱陵島(울릉도)이다.
 
本來(본래) 여행을 즐기는 마음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이러한 생각과 샛빨간 동백의 정열에 주고받는 벗의 사연을 생각할 때마다 몇차례 計劃(계획)은 가져보았으나 流産(유산)되고 말았다. 모처럼 鬱陵島(울릉도) 여행길에 오를 機會(기회)를 마련하니 가슴이 여간 설레는게 아니었다. ‘太古(태고)의 神秘(신비)를 간직하고 망망한 東海(동해)의 물굽이에 금시라도 지워질 듯 외롭게 자리잡고 있는 한 줌의 섬’이라고 表現(표현)된 鬱陵島(울릉도)는 浦項(포항)으로부터 268km 지점에 있으며 面積(면적)은 濟州道(제주도)의 25分(분)의1 정도이지만 우리나라 섬으로는 일곱째 가는 섬이다. 바람과 돌 그리고 女子(여자)가 많다하여 예부터 흔히 섬을 가리켜 三多島(삼다도)라 하지만 鬱陵島(울릉도)는 여기에 오징어와 山(산)이 더 많아서 五多島(오다도)라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섬의 모양도 5角形(각형)이다. 鬱陵島(울릉도)는 믿을 수 없으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는 傳說(전설)과 東海(동해)의 絶景(절경)이 한데 몽친 孤島(고도)이다. 지난해 8月(월) 나는 浦項港(포항항)을 出發(출발)하는 船客(선객)이 되었다. 미끄러져가는 客船(객선), 소란한 浦項(포항) 松島海水浴客(송도해수욕객)들의 떠들썩한 소리도 멀어가고 수많은 전등불빛이 사라져갈 무렵 둥근 달이 검은 바닷물 속에서 떠오르지 않는가.
 
내가 두메산골 태생인 탓인지는 몰라도 ‘달맞이’하면 먼저 地平線(지평선)을 생각하게 되는데 지금은 水平線(수평선), 아니 물 속에서 둥근 달이 떠오르니 마치 東海(동해)의 龍王(용왕)이 뻘건 알을 낳고 올라가지 않았나 하는 신비감을 느끼게 된다. 船客(선객)들은 계속되는 旅行(여행)에 피로가 밀려오는지 잠들을 청했다. 나도 어느새 잠이 들은 모양이었다. 새벽의 찬 기운에 잠을 깨고보니 사방이 바다로 빙 둘러쌓여있다.
 
出港(출항)한지 10餘時間(여시간)이 지나서 꿈의 나라 鬱陵島(울릉도)에 도착하였다. 아침 6時頃(시경)이다. 섬 중앙에 자리잡은 海拔(해발) 983m의 聖人峰(성인봉)을 위시하여 해변은 모래사장이 아니라 병풍같은 절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험준한 岩石(암석), 낭떨어지 위에 뿌리를 박고 2千年(천년)의 年輪(연륜)을 간직한 채 말없이 서있는 향나무. 이것이 자연을 즐기는 詩人(시인)들의 사랑을 받았음은 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붉은 정열을 토하는 동백. 향기 짙은 ‘百合(백합)의 王(왕)’이라 부르는 붉은 山百合(산백합)이 道洞港(도동항) 左右(좌우) 200m나 되는 岩壁(암벽)에서 群舞(군무)하는 모습이 이 섬의 첫 풍치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道洞(도동)에 상륙하는 동안 道洞(도동)의 전경은 안개 속에 쌓인 채 조용하여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無人島(무인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港口沿邊(항구연변)에는 몇 척의 發動船(발동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陸地(육지)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방어와 오징어의 세계적인 어장인 鬱陵島(울릉도)에 웬 船舶(선박)이 이처럼 많이 고장이 나있나 하고 의아심을 갖게 되었다. 多島海(다도해)에서는 漁船(어선)이 고장나거나 수리를 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船舶(선박)이 陸地(육지)로 기어올라간다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은 現象(현상)이다. 나중 알고보니 鬱陵島(울릉도)에서는 저녁 漁場(어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모두들 그렇게 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왜 그런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폭풍에 대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부두에는 살아있는 오징어들이 숙달된 어부의 작은 칼에 배들 찢겨 건조장으로 옮아져 가는 것이 한창이었다. 검은 오징어 내장이 썩는 냄새는 이곳을 떠나서는 좀체로 맡기 어려울 것 같다. 東海(동해)안에 가본 일이 있지만 그곳은 울릉도만큼 짙은 냄새를 풍기지는 않았다.
 
긴 여행에 겹친 피로를 이 작은 鬱陵島(울릉도)에서 몽땅 풀어보릴 양으로 식사 후 탁주를 서너잔 마셨다. 안주는 오징어회였는데 토막토막 썰어논 흰오징어가 꿈틀거리며 살아있어 내심 놀랐었다.
 
밤이라면 좀 더 마시고 싶은 마음도 생겼을 것이지만 아침부터 취하는 것도 쑥스러워 약간 얼큰할 정도로 끝냈다. 약간 술기운이 오린 채 鬱陵島(울릉도)의 번화가 (본명 명동거리)를 따라 藥水(약수)공원을 찾았다. 항구의 운치를 다분히 띄운 것은 선박보다도 갈매기다. 뭍에서 살은 나에겐 꾸욱꾸욱하며 선창가를 나르는 갈매기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을 나에게서 불러 일으켰다. 이곳에서 비로소 이야기로 만들던 비바리 (海女(해녀))를 볼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일이었다. 바람과 파도에 거칠어진 검은 피부는 아주 흰살결의 고운 海女(해녀)만을 ‘海女(해녀)’라는 어휘에 연상시켜왔던 나에게는 퍽 이상하게 보였다. 공원 안에는 鑛泉(광천) (藥水(약수))이 솟고있어서 이 地方人(지방인)은 물론 관광객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이곳을 거쳐 한 잔씩 마신다고 한다. 10여 년이 넘어 보이는 탄탄히 생긴 鐵器(철기)(약수잔)를 보아서도 대략 추측이 갈 수 있었다. 그 맛은 감을 먹는것과 같이 약간 떫었다. 苧洞(저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맨처음 눈에 띤 것은 촛대岩(암)이었다. 이것은 苧岩(저암) 입구에 우뚝 서서 만경창파를 굽어보고 항구를 지키는 수호신과 같았고, 뱃길을 안내하는 등대와도 같이 믿음직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아침에 도착하여 하루종일 이곳저곳 걸어다닌 피로가 몸을 노곤하게 했다. 客地(객지)의 황혼은 어느 누구에게나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가져다준다. 바다의 냄새가 풍기는 시원한 바람과 조용한 항구의 그림같은 풍경, 어둠이 깔린 창문에 하나 둘 전등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먹던 오징어회의 미련이 어느새 나를 ‘동백식당’으로 끌어가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鬱陵島(울릉도) 일주를 떠났다. 交通(교통)은 해안을 따른 一週路(일주로)와 聖人峰(성인봉)을 넘는 橫斷路(횡단로)가 있다. 산간소로를 따라 떠나고 싶었지만 그에대한 만반의 준비도 여의치 않은데다 陸上交通(육상교통)은 지극히 불편하다하여 船便(선편)을 利用(이용)하기로 했다. 아침 10時(시)가 좀 지나서 발등선으로 道洞港(도동항)을 미끄러져 나갔다. 島岸(도안)은 斷岸絶壁(단암절벽)으로서 奇觀(기관)을 이루고 마치 천연의 성곽처럼 보였다. 어제 보았던 苧洞(저동)의 촛대岩(암)을 지나 등대처럼 보이는 靑島北苧岩(청도북저암) 옆을 지났다. 여기는 갈매기 떼와 검정물오리 떼가 많이 앉아 그 흰 똥이 바위를 온통 덮고 있어서 마치 흰 등대와 같았다. 그들은 관광객들의 카메라 렌즈의 초점이 되었다.
 
모두들 자연스러이 나르는 모습을 촬영하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그들은 좀체로 그 바위를 떠나지 않았다. 어느 짓궂은 觀光客(관광객)이 그들을 날려볼 양으로 모자를 흔들며 고함을 쳤다. 그 덕분인지 한두마리가 나르더니 전부 뒤따라 날기 시작했다. 셔터 소리가 부지런히 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發動船(발동선)이 채 멀리 가기도 전에 또 와서 앉는다. 잠시 떠들썩하던 觀光客(관광객)들도 다시 조용해졌다.
 
안내역을 겸한 船長(선장)이 다음은 龍宮(용궁)이 나온다고 했다. 모두들 큰 기대를 갖고 기다렸다. 드디어 龍宮(용궁)이 보였다. 그곳은 寄岩(기암)을 이루는 海上(해상)의 洞窟(동굴)이었다. 아침햇살이 洞窟(동굴) 속에 환히 비쳐들고 있는 그 광경은 너무도 신비로웠다. 觀光客(관광객)들의 아!하는 감탄사가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나도 그랬는지 기억이 없지만 부지런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은 잊지 않았다. 鬱陵島(울릉도)의 모든 신비가 龍宮(용궁)을 통해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入口(입구)에 自然(자연)의 조각가가 다듬어 세운 돌기둥, 안으로 들어갈수록 짙어만 가는 청흑색의 이끼로 뒤덮인 窟壁(굴벽), 그 큰 굴속은 東海(동해)의 龍王(용왕)이 起居(기거)했음즉도한 威容(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龍宮(용궁)으로부터 얼마 떨어진 곳에. 龍宮島(용궁도)가 있다.
 
이 섬은 머지않아 ‘헤리콥타’ 비행장으로 쓰일 것이라고 한다. 斷岸絶壁(단안절벽) 위에는 各種(각종)의 樹木(수목)이 무성했고, 鬱陵島(울릉도) 동백꽃 노래와 함께 香木(향목)과 동백잎의 윤택은 그중에서도 뚜렷이 드러나 보였다. 병풍같은 절벽과 우거진 숲이 地上(지상)의 絶景(절경)이라고 한다면 海底(해저)에는 또 크고 작은 돌로 잘켜져있는 海底(해저)의 경치가 水族館(수족관)의 그것처럼 깨끗하고 맑게 들여다 보였다. 그뿐이랴 너울거리는 海草(해초)와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다니는 크고 작은 물고기도 환히 보였다. 海上(해상) 10m 가량 되어보이는 三仙岩頂上(삼선암정상)에는 天然記念物(천연기념물)인 香木(향목)이 서 있었다. 船長(선장)이 뱃머리를 海底(해저)에서 우뚝 나와 솟은 두 개의 돌기둥 사이로 돌리자 觀光客(관광객)들은 또 한 번 감탄사를 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가 천천히 그 사이를 지나갈 무렵엔 나도 돌기둥이 금시라도 허물어질까봐 걱정을 하는 拙丈夫(졸장부)가 되고 말았다. 통통선이 天府港(천부항)에 入港(입항)하자 상당한 시간을 지체하겠다고 한다. 500m 전방에 있는 孔岩(공암)은 苧洞(저동)과 卵峰(난봉)의 陸上(육상)의 洞窟(동국)에 비해 대조적으로 海上(해상)에서 岩(암)을 뚫은 洞窟(동굴)이어서 그 사이로 고기잡이 발동선이 마음대로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이 孔岩(공암)은 人工的(인공적)으로 海上(해상)의 누각을 建立(건립)하다가 실패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통통선을 기다릴 시간도 충분해서 다른 일행과 함께 玄圃(현포)까지 검토했다. 그 사이의 觀光道路(관광도로)는 상당히 다듬어져 있어서 분에 넘친 대접을 받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는 鬱陵島産業開發(울릉도산업개발)의 原動力(원동력)이 되고 있는 1,200KW出力(출력)을 자랑하는 錐産水力發電所(추산수력발전소)가 있다. 이 작은 섬에 火力(화력)이 아니라 水力(수력)이라니 이 또한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더불어 도로변에는 水道(수도)가 가설되어 있었다. 다시 玄圃(현포)에서 통통선을 갈아타고 開拓(개척) 當時(당시) 首都(수도)였던 台(태)은洞(동)으로 옮겼다. 여기는 다른 곳과는 달리 遺蹟遺物(유적유물)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곳의 성황당(女神堂(여신당))의 哀話(애화)는 鬱陵島(울릉도) 사람이면 三尺童子(삼척동자)라도 알고있는 정도이다. 待風岩(대풍암)의 등대는 넓은 東海(동해)의 船舶(선박)에 대한 오아시스가 되고 있다.
 
해변가의 평탄한 곳은 가는 것마다. 오징어 乾燥場(건조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南陽港(남양항) 모래사장도 그와 마찬가지다. 鬱陵島(울릉도) 오징어는 대부분 外國(외국)에 輸出(수출)하고 있으나 本土人(본토인)들도 鬱陵島(울릉도) 오징어 맛은 채 무를것이라 한다.
 
<大學院(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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