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통역사 조성현 동문

일요일 오전 7시 KBS ‘일요뉴스타임’, 작은 동그라미 속에서 손짓으로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수화통역사 조성현(화공 91졸) 동문이다. 우리대학 수화동아리 ‘손짓사랑회’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그. 이번에는 손으로 내는 목소리가 아닌 진짜 목소리를 들어봤다.

 

▲ 이 수화는 알파벳 ‘I’, ‘L’, ‘Y’를 합친 것으로 “I Love You”를 의미한다.

조성현 동문은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언어통역사와 하는 일이 같다’고 설명했다.

“언어통역사는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두 문화를 연결해 주지요. 수화통역도 마찬가지에요. 말 그대로 ‘통역’이지요. 같은 한국인이라도 농인(청각장애인)과 청인(비장애인)의 문화가 다릅니다. 두 문화를 연결해주는 것이 제 일이죠.”

제대 후 그는 교회에서 친구가 수화 봉사를 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이후 수화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수화통역을 업으로 삼고 있다. 시작은 자원봉사부터였다. 그냥 수화통역사로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 93년부터 비로소 방송 통역을 시작, 바로 다음 해부터 뉴스 통역을 하게 됐다. 이외에 장애인 올림픽에서도 통역을 맡았으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이버 강의를 통역하는 일도 하고 있다.

어느덧 인생의 반을 수화와 함께했다. 이제는 말하는 것보다 수화가 편해졌다고 한다. 돌아보니 후배 통역사들도 많이 생겼다.“일을 오래 하다 보니 예전에 봉사하면서 만났던 아이들이 어느새 다 컸더군요. 장애인 올림픽에서 만났던 선수들은 어느새 감독이 됐습니다. 이 사람들과 다시 만나 어울리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뉴스 20년에 얽힌 희로애락
조 동문은 “가장 최근에 한 실수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이름을 ‘6일 째’라고 통역한 것”이라며 웃었다. 생방송으로 뉴스 통역만 20년, 그 동안 별의별 일들이 다 있었다.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을 잘못 통역하는 일은 예사다. 아나운서의 멘트를 실시간으로 통역하다 보니, 아나운서가 실수를 하면 같이 실수를 하게 된다. 이외에도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한창 방송 중인데, 카메라를 세워 놓은 고정대의 바퀴가 조금씩 옆으로 굴러가는 거예요. 당황하지 않고 저도 침착하게 게걸음으로 카메라를 따라 움직였죠.”

올 한해는 특히 세월호 참사 등 슬픈 소식들이 많았다. 조 동문은 영화 ‘새드무비’ 이야기를 하며 수화통역사의 고충을 전했다. 영화에서 수화통역사 수정(임수정 분)은 소방관인 남자친구 진우(정우성 분)의 사고소식을 생중계로 전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고를 낸다. “수화통역사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 뉴스를 전하다 보면 힘들 때가 많아요. 저도 슬픈 뉴스를 전하다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는 실수를 한 적 있죠. 수화라는 것이 손짓이 반, 표정이 반인데 감정을 절제하고 통역을 하려면 어렵습니다. 또 황당하게 제가 피해자인 사건을 보도한 적도 있어요. 부동산 사기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데 가만 보니 제가 집을 산 부동산이더라고요.”
 
 

아직 넘어야 할 벽이 많다
베테랑인 그도 아직 벽을 실감할 때가 있다. 바로 수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수화가 세계 공용어인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난다”고 전했다. 이처럼 수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수화통역을 여전히 ‘봉사’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다. 통역 의뢰가 대부분 자원봉사 차원으로 이뤄지기에 국내 수화통역사의 보수는 상당히 낮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의 경우 수화통역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좋고 보수도 높다. 또한 개인 통역이 보편화 돼있어 일거리도 많다. “친구의 딸이 수화통역사를 꿈꾸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 선진국처럼 사회적 위치가 보장 돼있지 않아 걱정입니다. 그나마 먼저 길을 걷고 있는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죠.”

그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부터 장애인 복지에 대한 인식까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뉴스에서 수화를 꼭 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아직 있어요. 이런 인식들이 짧은 시간에 바뀌기를 기대하지는 않아요. 백년이 지나 바뀔 수 있다면 바꾸려고 노력해야죠.”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곧 행복
어려운 경제 상황. 청년들은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요즘 같은 세태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음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수화’를 좇아 직업을 택한 그는 요즘 청년들을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학들의 자원봉사 동아리들도 문을 닫고, 대신에 취업 동아리들이 마구 생기고 있다지요? 대학들이 취업학원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일이 남한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저는 후배들에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보라고 말합니다. 닦여 있는 길로 가다보면 목표의식도 없고 재미도 없지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 아무도 못 가는 나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남들에게 인정도 받게 되고, 그 자리에서 최고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가슴에 달린 수화통역사 배지가 반짝이며 그의 말을 증명하는 듯했다. 인터뷰 말미, 후배들에게 남길 메시지를 요청하자 조 동문은 능숙한 수화로 이런 말을 전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일에 도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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