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예전’은 우리 생활에 두 번째로 파괴적 영향을 미쳤던 2008년 2학기 이전 시절이다. 나의 교수 생활에서 공식 강의시간 이외의 학부생 자율 스터디가 급격하게 힘들어진 것이 이 시점 이후가 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예전’에는 공휴일이나 축제 등과 같은 이유로 강의 진도를 채 나가지 못하면 학기말을 앞둔 날 하루를 잡아 종일 블록세미나를 하고 기분 좋게 뒤풀이까지 한 뒤하고 헤어지곤 했다. 뒤풀이 뒤 심야에 차가 끊기면 내 차로 귀가했던 추억을 즐겁게 하면 그 사람은 어김없이 내가 ‘예전’이라고 부르는 이 시절 졸업생들이다.

2009년 이후에는 교과진도를 위해 하루를 통째로 털어넣는 일부터 불가능해지더니 자율스터디를 원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다가 작년 2013년에는 몇 명과 하던 별도의 전공훈련 프로그램도 중단됐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과외나 편의점 근무 같은 알바 가 강의 못지않게 정규 활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취업준비 시간이다. 각자 다른 강의 시간에 알바나 취업준비 시간을 빼면 보다 고차적인 전문성 배양을 위한 시간량 자체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배치된 시점도 개인별로 들쑥날쑥이니 다같이 공부할 별도 시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공부는 정규 시간에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기중 교과량은 줄이는 대신 교과 텍스트에 대한 독해방식과 수업진행방식의 집중도를 높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즉 지금의 학부생들은 별도의 공부 시간을 내지 못 한다는 것을 아예 전제하고 나서, 강의실에 앉아있는 80분 수업 안에 당일 배울 내용을 완전히 습득시키는 방안이 필요했다.

이래서 매 강의시간에는 반드시 1~2명의 수업기록자를 두어 당일 수업에 집중하도록 하고 그 내용을 다음 강의 시간에 10분 내에 보고하도록 했다. 이럼으로써 수업 내용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권이 아니라 1~2권의 텍스트를 선택하여 팀별로 나누어 딱 한 부분만 철저하게 공부하도록 하여 각종 방법을 투입하여 다른 수강생들을 책임지고 이해시키도록 독려하고 이 발제 과정 자체를 평점에 30% 포함시켰다. 수업량을 줄이는 대신 수업의 질은 고밀도로 높이려는 의도인데 학기말 가면 상향평준화된 그동안의 성과를 두고 평점이 어려워지는 곤란을 겪곤 한다.

하지만 서글프다. 당장에 닥친 집안의 어려움 때문에 알바와 취업준비에 소모되는 그 시간이 대학에서나 가능한 보다 높은 품질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올리는 데 쓰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지구 역사상 80%에 달하는 대학진학률을 앞에 두고도 우리 교육의 질에 안심할 수 없는 전망, 그리고 일상에 마모되는 이 어려운 시대의 젊은 대학생들을 보면 교수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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