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대학 생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미팅과 축제였다. 대학교만 가면 여학생들과 실컷 미팅을 하고 예쁜 여자 친구를 데리고 함께 축제에 참가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대학 신입생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꿈꾸었던 대학생활은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고 내가 고대했던 그런 축제는 없었다. 축제를 대신한 것은 당시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대동제라는 것이었다. 대동제 기간에 각종 행사가 열렸는데 대부분 군부 독재를 비판하는 내용들이었다. 주점도 있었지만 술자리에서도 독재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축제의 마지막은 전체 집회와 교문 돌파 싸움이었다. 대동제가 끝난 교정은 최루탄 냄새로 가득했다. 1984년 내가 경험한 첫 대동제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2014년에도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는 대동제가 벌어졌다. 이름은 같지만 30년 전과는 전혀 다른 대동제다. 그런데 대동제를 보는 기분은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30년 전에 기대와 어긋난 대동제를 경험했을 때는 뿌듯함을 느꼈었다. 함께 고민하고 같이 행동하면서 모두가 하나라는 동질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도 30년 전 대동제에서 내가 가졌던 그 감정을 느꼈을까?

주점은 매년 진화하여 이번에는 갖가지 복장을 한 친구들이 주점을 꾸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협찬도 늘어 아침부터 소주 칵테일을 만들어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음 행사를 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기발한 게임도 등장하였다. 이상한 자전거를 타고 정해진 곳까지 넘어지지 않고 가면 돈을 준다고 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동제 기간 교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았지만 모두 하나가 된다는 대동제의 취지와 맞는 행사는 찾을 수 없었다.

대동제 기간에 주점을 준비하는 몇 사람, 술자리에 모인 몇 사람, 그들끼리만 하나 된 것처럼 보였다.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그저 구경꾼들일 뿐이었다. 교수도 학내 구성원이지만 주점에 가서 술값을 내주는 것 말고는 낄 구석이 없다. 가장 처량한 이들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많은 유학생들이 있지만 그들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듯 보였다. 대학생으로서의 고민도 찾을 수 없었다. 사회 문제는 고사하고 대학생이면 모두 느끼고 있는 취업과 관련된 행사조차 열리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하나가 되려면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 관심도 없는 일에 동참하라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공통의 관심사를 끌어내는 것은 총학의 몫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왜 꼭 하나가 되어야 하냐고?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우리 세대는 하나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고 그렇게 생활했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으니 대동제의 의미 운운하는 것부터가 우스운 짓인지도 모르겠다. 대동제의 의미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내년부터 축제 명칭은 ‘소동제(小大同)’ 이렇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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