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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평가 논쟁 핵심은 ‘시행여부’ 아닌 ‘공개방식’연구결과 “학생들 평가 신뢰성 이미 입증” … 공개방식에 대해선 심화된 논의 필요
  • 조벽 석좌교수
  • 승인 2008.05.05
  • 호수 1458
  • 댓글 0

기획연재 - 조벽 석좌교수에게 듣는 ‘우리학교 발전을 위한 제언’ ① 강의평가제도 발전방안
 
개교102주년을 맞은 우리학교. 현재 많은 갈등과 혼란 속에서 앞으로의 100년을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강의평가, 재정문제, 우수인재 유치를 위한 노력 등에 대해 우리학교 조벽 석좌교수의 제언을 들어보고자 연재 기획을 준비했다.               편집자

 


 

 

 

 

 


최근에 강의평가에 대해 논의가 많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야 하듯 필자에게 ‘미국에서는 어떻게 하는가’라는 주제의 글이 요청되었습니다. 아마 필자가 미국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다녔고, 또 20년간 미국 대학 교수로 활동했기에 미국을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 되었는가 봅니다. 하지만 미국에는 1800개의 4년제 대학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되는 강의평가에 대한 내용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또한 미국의 사례가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도 다 적용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강의평가를 해야 하는가

“아무리 ‘강의평가제’가 교수들의 교육 철학과 감정에 거부감을 준다 하더라도, 대학 교육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불신과 회의에 대한 검토방안의 도구로 교수 평가제가 요구되어지는 만큼, 앞으로 어쩔 수 없이 보편화되리라고 본다. 대중의 인식을 철학적 논쟁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평가제를 시도하는 방법에 있어서 교수들이 사회의 비판에 이끌림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능동적으로 평가제를 대학교육 개선의 방안으로서 적극 이끌어나갈 것인지의 차이로 압축될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평가를 하느냐 마느냐에 있지 않고, ‘어떻게’ 하느냐만 남은 것이다.”

1997년 ‘공학교육과 기술’에 실린 필자의 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이때에는 한국에서 강의평가제 도입을 두고 찬반론이 한창이던 시절이었습니다. 10년 전에 필자가 이렇게 확신 찬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미국의 시행착오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24년도에 이미 강의 평가에 대한 체계적인 찬반론 연구들이 나와 있을 정도로 강의 평가제와 이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도 깊습니다. 특히 1970년부터 약 10년 넘게 강의 평가제에 대한 논쟁이 전문가들 사이뿐만 아니라 각 대학 차원에서도 활발하게 벌어졌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 전후로 종결되었고 이제는 완전 정착되었으며 대학의 당연한 절차가 되었습니다. 강의 평가에 대한 방대한 연구결과가 누적되었기에 개인적 경험과 감정보다는 객관적 데이터를 놓고 의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빙성 입증된 강의평가

강의평가의 신빙성을 따지자고 하면 최소한 신뢰성(reliability)과 타당성(validity)이란 두 가지를 만족시켜야 합니다. 강의평가에 대한 가장 첫 질문은 “과연 학생들의 판단을 신뢰할 만한 것이냐.”입니다. 아직도 미성숙한 20대 전후의 대학생들이 과연 자신들보다 연장자인 교수에 대한 평가를 올바르게 하겠느냐, 감정이나 선입견에 좌지우지하지 않겠느냐 하는 질문은 미국에서도 오랫 동안 강의 평가의 신뢰성을 따질 때에 가장 자주 거론되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강의평가에 대한 연구를 종합 분석해 본 결과, 학생들의 강의 평가는 신뢰성이 아주 높다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한 강의평가의 신빙성에 대하여 행해진 1,600 연구를 모두 검토해 본 결과 학생들의 강의 평가 점수의 상관도는 0.90에서 0.94로 상당히 높았습니다. 이후의 많은 후속 연구에서도 대략 비슷하게 높은 상관도가 나타났습니다. 즉 일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의평가에 대해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진실한 교육자보다는 약장사 같이 유창한 말재주로 강의를 재미있게 이끌어 가는 교수에게 후한 평가를 준다’는 믿음이 팽배합니다. 또 ‘실력은 없어도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 점수를 후하게 주는 교수들이 높은 평가 점수를 받는다’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말 잘하는 것’과 ‘전문 지식과 실력이 있다’와의 구분을 명확히 하여 강의 내용의 수준과 질을 평가할 줄 안다고 합니다.

또한 교육의 효과는 즉각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업 직후의 평가는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로 보면 학기말에 한 평가와 5년이나 10년 후에 내린 평가는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진실이 깃든 훌륭한 강의는 지금 당장도 인정받지만 나중에 회고해 보아도 높은 평가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누적된 연구를 통하여 강의평가에 대한 설들이 그릇됐다고 밝혀졌지만, 약간의 상관관계가 입증된 요인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필수과목은 일반적으로 선택과목보다 평가 점수가 좀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가 점수와 가장 상관관계 지수가 높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학생들이 얼마만큼 배웠는가.’라는 항목 입니다.

학생들의 평가가 이토록 정확한 이유는 아마도 강의의 수준과 내용이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어느 교수를 한 학기 동안 지속적으로 가까이서 일거일동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바로 학생들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때문에 인상이나 성급한 편견이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강의평가가 점차 안정되어 가면서 학생들의 평가는 신뢰할 만한 것이고, 그 타당성도 입증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강의평가의 목적

미국 대학에서 강의평가를 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교수들 스스로가 강의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학생들로부터 피드백을 얻기 위한 발전 지향적 목적(formative evaluation)이고, 둘째는 대학 행정 쪽에서 교수의 능력과 기여도를 점수로 환산하여 승진이나 보수 책정 같은 인사 결정을 할 때 반영하기 위한 결론 지향적 목적(summative evaluation)입니다.

그러나 첫째 목표는 쉽게 달성되지 않습니다. 교수들 스스로가 학생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 강의의 질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강의평가를 받을수록 교수는 점점 더 훌륭한 강의를 하게 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대학교 전체의 강의 평가 점수는 매 학기 조금씩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미시간공과대학의 경우, 학교 전체의 강의평가 평균 점수가 놀랍게도 지난 10년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공교롭게도 강의평가의 둘째 목적인 교수업적평가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강의평가가 교수의 업적평가와 승진심사에 반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연구업적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강의평가 점수는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교육부분만 따지더라도 강의시수만 채우면 됐지 많은 시간 투자가 요구되는 강의품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교수업적평가 연구와 비교해 미비한 영향을 미치는 강의평가 점수는 오히려 강의에 신경을 쓰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교수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강의평가가 발전 지향적 도구로써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대학은 교수들이 강의평가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법으로써 강의평가 결과의 공개를 고려하게 됩니다.

공개방식에 대한 논란

하지만 미국에서는 대학본부가 나서서 강의평가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흔히 학생회가 강의평가를 따로 실시하여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학생회는 학생들의 “알 권리”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권리의 주장은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기에 결국은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끝없는 말싸움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생회는 강의평가를 실시하기에 앞서 교수님의 동의를 받습니다. 주로 강의에 자신 있는 교수들이 동참하며, 극소수의 교수는 비록 강의를 잘하더라도 철학적 근거를 내세우면서 참여를 거부합니다. 물론 강의에 자신이 없는 교수님께서도 같은 이유를 내세우며 불참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 차이를 이미 압니다. 결국 교수의 불참은 강의가 좋지 않다는 입소문을 입증해주는 셈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교수에게 최소한의 체면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강의평가의 공개는 학생회가 주도하지 않더라도 이미 인터넷에 미국의 모든 교수를 대상으로 한 강의평가 사이트가 여럿 존재합니다. 여기서는 교수의 동의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점수만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유까지 서술되어 있습니다. 어느 사이트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백 만 명이 넘는 교수에 대한 강의평가가 적나라하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글로벌 시대와 ‘열린 세상’의 특징이며 대세이기도 합니다.

10년 전에 강의평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하였지만 그 당시 더 중요한 이슈는 ‘강의평가를 하되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였습니다. 오늘 날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할 것인가 아닌가를 두고 새로운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슈는 ‘공개를 하되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조벽 석좌교수  dgupress@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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