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일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교수는 강의를 하고 학생은 듣는다.

학생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지만 나중에 책을 찾아보기로 한다. 75분 동안 강의실에는 교수님 목소리만 낭랑하다. 다는 아니겠지만, 2014년 가을 우리 강의실의 모습이다.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유치원에서는 물론이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선생님이 “아는 사람?” 하면 너도 나도 “저요, 저요” 하면서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선생님이 다른 학생을 시키면 아쉬워하면서 손을 내리곤 했다.

그러던 것이 고학년이 되고 나이가 들면서 손을 드는 것이 어색해졌다. 선생님이 묻지도 않았는데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는 일은 ‘튀는 행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질문한다는 것은 내가 뭘 모른다는 것이고, 그건 곧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해 부끄러운 일이 돼버린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것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성숙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영어수업이 많아지다 보니 질문하기가 더 어색해졌다. 어쩌다 외국인 학생이 유창한 발음으로 질문이라도 하게 되면, 우리 학생들은 의자 더 깊숙한 곳으로 몸을 묻어버린다. 이래저래 우리 교실에서 학생들 목소리 듣기는 쉽지가 않다.

몇 년 전 연구년으로 미국에 머물 때, 학부강의를 듣고 또 강의도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사실 대학원 수업만 받아봤지 학부생들의 수업에는 경험이 거의 없던 터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수의 질문에 대학생들이 어린 학생들처럼 손을 번쩍번쩍 드는 것 아닌가? (물론 “저요, 저요”는 없었다.) 어떤 학생은 예의가 없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에겐 신선하고 놀랍기조차 한 경험이었다. 내가 강의할 차례가 되었을 때는 ‘뭘 물어볼까?’ 또 ‘뭘 물어올까?’를 미리 생각해보느라 준비에 시간이 배는 더 들었다. 수업 중에는 바짝 긴장이 되곤 했다.

국내 모 대학에서 Education 3.0을 실시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강의는 온라인에서 미리 듣고, 정작 수업시간에는 강의가 없다. 학생-교수, 학생-학생 간의 질의응답과 토론만으로 진행된다. 인문사회 분야 교과목 뿐 아니라 이공계 과목도 그렇다. 교수나 학생 모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수업시간에 낭패 보기 십상이다.

우리 강의실에서 질문이 활발하지 않은 데에는 강의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꼭 당부하고 싶다. 수업시간에 손을 들라고, 그리고 입을 열라고.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말고 물으라고. 그래서 이 가을 더 많은 강의실에서 더 자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교수님, 질문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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