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석
경영학과 09졸

흑백으로 인쇄된 세계 지도를 편다. 물론 크고 자세하며 최대한 넓은 대축척 지도일수록 바람직하다. 그러한 지도 위에 현재 나의 위치를 검은색 점으로 찍는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그 점은 나를 따라 위치를 이동하면서 나의 이동궤적을 알려주는 검은색 선을 만든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등장할 차례이다. 그 사람의 위치 또한 다른 색으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파란색으로 표시를 하자. 마찬가지로 그 점 또한 점의 주인의 움직임을 따라 함께 이동한다.

이렇게 우리는 가상의 지도 위에 60억 인구의 이동궤적을 모두 표시해 본다. 결과는 매우 복잡하고 어지럽겠지만 과연 한 색상의 선이 다른 색상의 선과 규칙적으로 5회 이상 마주치는 경우는 흔한 상황일까? 이것은 무슨 결과를 의미하는가?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전 세계 60억의 인구를 감안했을 때 결코 많은 수가 아니다. 오늘 마주쳤던 사람들과 내일 또 만나고 그 사람들을 다음 날 또 만나게 된다.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되거나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이고 이것이 수학적 계산의 결과이다.

나는 이러한 상상을 통해서 ‘인연’이라는 말을 새롭게 정의하고 싶어졌다. 인연이라는 말은 굉장히 흔히 사용되는 어휘이지만 과연 우리들은 인연이라는 말에 대해서 진정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 본 적이 있었던가? 사전적인 정의로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의미하는 ‘인연’이라는 단어는 실제적으로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내가 어제 장난처럼 던졌던 동료의 외모에 대한 비난과 냉소는 그러한 인연을 가볍게 봤던 행동이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언젠가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던 또 다른 누군가는 우리의 인연이었고 당신의 행동은 그 인연을 가볍게 생각해 버린 결과였다.

혜민 스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입니다.” 작은 인연이더라도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내 호의를 보여준다면 그들 또한 내가 보여준 작용에 대한 반작용을 보여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또한,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은 도의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겠지만 상냥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어 훗날 그가 내게 적절한 도움이 된다면 경제적으로도 매우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일평생 마주하는 많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고, 나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다고, 내가 생각하기에 약간은 나보다 부족하다고 해서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업신여기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인연에 대한 학습이 부족한 사람이다. 확률적으로 이렇게 큰 의미를 갖는 인연을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등한시 하지 않았는지, 오늘은 다들 자신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인연에 대해서도 더욱 진중한 자세를 가지고 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동국대 학우들이여, 이 글을 마친 후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치는 눈을 가진 사람과 밝은 웃음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눠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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