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사유의 시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시집의 표제작 ‘님의 침묵’ 중 한 구절이다. 표제작 ‘님의 침묵’을 포함해 총 88편의 시가 수록된 시집 ‘님의 침묵’은 26년 일제강점기라는 삼엄한 어둠 속에서 발간됐다. ‘님’이 없는 시대에 만해 스님은 시집 ‘님의 침묵’을 통해 오지 않는 ‘님’을 부르짖었다. 수록된 88편의 시들 속에서 우리는 ‘님’에 대한 만해 스님의 타는 연민을 여지없이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님의 침묵’을 읽어야하는 걸까. 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난 세월호 참사로부터 시작해 여기저기서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들은 우리사회에 ‘님’의 부재를 실감시켜 주었다. 독자 저마다 느끼고 있는 ‘님’의 부재 또한 있을 것이다.

‘님의 침묵’의 발간으로부터 8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화자가 애타게 찾는 ‘님’은 아직도 그 의미가 새삼스럽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한 ‘님’의 부재는 우리에게 ‘님’에 대한 연민과 간절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집 ‘님의 침묵’을 고전으로써 읽어야하는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시집 속에서 불교인 만해 스님, 시인인 만해 스님, 독립투사인 만해 스님, 사상가인 만해 스님 등 만해 스님의 다양하고 깊은 사유를 접할 수 있다. 시집은 시 ‘님의 침묵’의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같은 구절을 통해 불교의 연기사상, 인연사상을 보여주는가 하면, 시 ‘금강산’의 “너는 너의 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 같은 구절을 통해 시대에 대한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처럼 만해 스님의 다양한 사유는 시집을 하나의 길로써 우리 앞에 제시한다. 그 길의 도처에서 우리는 ‘님’을 만날 수 있다. ‘님’과의 만남을 통해 시대를 보는 안목을 넓히고 나아가 만해 스님이 품었던 연민을 배우는 것이다.

만해 스님은 독립투사이자 시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대학의 제1회 졸업생이기도 하다. 1879년 태어나 1944년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만해 스님은 한평생 올곧은 신념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았다. 만해 스님의 삶은 거대한 활화산이었다. 당대 식민 사회를 뜨겁게 달군 활화산이었으며 연민으로 불타오르던 활화산이었다.

1925년 내설악 백담사에서 만해 스님이 종이 위에 찍은 연민의 발자국들은 아직도 풍란(風蘭)보다 매서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고전이다.

시대가 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님’의 부재 속에 살고 있다. 우리시대는 어떤 ‘님’을 부르짖고 있는 건지 혹은 나의 ‘님’은 누구인지 ‘님의 침묵’이라는 고전의 창을 통해 한 번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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