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광수 행정학과 3
한때 그런 날이 있었다. ‘명문대’만 들어가면 불안한 앞날에 대한 모든 고민이 해결 될 것이라 말하던 때가 있었다. 밥상이든 책상이든 가리지 않고 저 달콤한 속삭임을 듣고 있노라면, 침상에서 고된 하루 끝에 눈을 감는 순간 그 이야기에 내 마음을 붙들어 매던 때가 있었다.

좋은 직장, 사회적 인정, 풍족한 노후 등 경쟁 끝에 기대되는 보상은 달콤하다.

하지만 누구든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에는 실패, 낙오로 점철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며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두려움을 덧칠한 강렬한 목표는 이외의 것들은 흐리게 하고 이내 보이지 않게 만든다. 복잡하고 흐릿하게만 보이는 ‘미래’에 대한 생각 역시 명문대로 표상되는 ‘경쟁’ 속에서 신기루처럼 흩어진다. 용이 되기를 갈망하는 이무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계층의 이동을 수반한다. 하지만 계층은 사회가 안정될수록 고착화되며, 상승이동의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게 된다.

우리의 현실과 욕망의 괴리는  C. Engelhardt & A.Wagener가 올해 초 소득 불평등과 소득 재분배의 편향적 인식에 대해 작성한 논문에 의해서 실증된다. 그들은 한국이 GDP 대비 사회 지출이 5%를 겨우 넘어 20여 개 비교국 대비 가장 낮고, 특히 스스로 계층의 상승이동을 원하는 비율인 인지 사회 이동성은 전 세계 최고임에도 실질 사회 이동성과 인지 사회 이동성의 차이가 두배 이상 나타남을 지적하였다.

노력하였음에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 노력의 가치는 그 빛을 잃고 ‘경쟁’은 우리 삶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된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경쟁’이 유효한 것은 낙오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GDP 대비 사회 지출이 작다는 것은 곧 실패를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언젠가 맞닥뜨릴 실패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더 높은 곳을 지향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것은 ‘3포세대’로 표상되는 현실의 팍팍함 때문이리라.

하지만 맹목적으로 좇던 목표가 사라지는 그 순간, 신기루처럼 흩어졌던 우리의 ‘앞길’은 마법처럼 다시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이 미친 세상 속 서로가 어디에 팔려가서 어떤 곳에 있더라도, 서로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어느 인디밴드의 노래 가사는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경쟁을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게 멋쩍은 감정과 동시에 경쟁에서 낙오되더라도 나 혼자만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현실이 뭘 해도 팍팍하고 계층이동도 어렵다면, 이제는 ‘경쟁’에서 잠시 눈을 돌려 실패하더라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오늘은 그대와 함께 우리의 ‘앞길’을 향해 첫 걸음을 떼는 그런 날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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