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만으로 양질의 콘텐츠 생산 가능한 대표적 매체
② 프로퍼블리카가 보여준 탐사보도의 힘

 

▲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작업 중인 프로퍼블리카 기자들


취재단은 지난 7월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프로퍼블리카를 방문했다. 그 곳의 첫인상은 ‘소박함’이었다. 뉴욕타임스의 사옥 같은 으리으리함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건물 외관에는 그 흔한 간판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입구에 붙어 있는 작은 문패가 전부였다.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탐사보도 기관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사무실 내부 또한 ‘겸손’했다. 우리는 그 곳에서 퓰리처상 수상자 제이크 번스타인(Jake Bernstein) 기자를 만날 수 있었다.

필요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

번스타인 기자는 지난 2011년 ‘월스트리트 머니 머신’이라는 기사로 퓰리처상 국내 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이 기사에서 그는 주택시장 거품이 꺼질 것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투자자들에게 증권을 팔아넘긴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을 고발했다. 번스타인은 보도를 통해 막강한 금융사들이 얼마나 비도덕적인지를 폭로한 것이다. 보도 이후 제이피 모건 체이스(J.P. Morgan Chase & Co.)를 비롯한 월스트리트의 여러 금융사는 금융감독관들의 조사를 통해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게 됐다.

▲ '월스트리트 머니 머신'으로 퓰리처상 수상한 제이크 번스타인

번스타인은 “감독관들은 우리의 보도를 바탕으로 각종 거래와 펀드, 그리고 수백만, 수억의 자금을 추적했다”고 말했다.

프로퍼블리카는 단순한 사실보도를 하는 매체가 아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실’ 저 너머에 있는 ‘진실’이다. 단순한 사실 뒤에 숨겨져 있는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낸다. 탐사보도는 더욱 정교해지고 치밀해지는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는 그들의 무기다. 번스타인은 탐사보도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기업이나 정부의 부조리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사실’속으로 숨어 버렸다”며 “이러한 상황은 이제 언론이 더 이상 사실보도만으로는 비판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졌음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프로퍼블리카의 탐사보도의 취재기간은 다른 언론사들에 비해 매우 길다. 번스타인도 ‘월스트리트 머니 머신’ 기사를 위해 모두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취재에 사용했다.

프로퍼블리카의 또 다른 기자 쉐리 핑크(Sheri Fink)는 그의 퓰리처상 수상작  ‘메모리얼 병원의 치명적 선택’ 기사를 쓰는 데 2년 6개월을 쏟아 부었다. 이들이 이처럼 긴 취재기간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본과 권력의 부조리를 파헤치기 위한 정보가 복잡하게 치밀하게 얽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보를 분석하고 찾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취재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생산되는 기사 수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언론이 쉽사리 탐사보도에 나설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프로퍼블리카의 목적은 기사 양이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라도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되는 것이다.

▲ 프로퍼블리카 홍보부장 니콜 콜린스

프로퍼블리카의 홍보부장 니콜 콜린스(Nicole Collins)는  “우리는 속보 경쟁에는 관심이 없다”며 “우리는 긴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고 사회부조리를 밝혀내기 위해 전념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재벌 후원으로 튼튼한 재원 마련
 
프로퍼블리카가 많은 인력과 오랜 취재기간을 감수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프로퍼블리카는 상업적 이익을 위한 기업이 아니라 비영리 언론기관이다. 프로퍼블리카는 금융 갑부 샌들러 부부의 기부금으로 2007년 설립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 前편집국장 폴 스타이거(Paul Steiger)는 샌들러 부부와 함께 손을 잡았다. 그는 프로퍼블리카 설립 당시 “사실보다 진실을 탐사하는 언론사를 만들겠다”라는 목표를 밝혔다.

샌들러 부부는 매해 1,000만 달러(한화 100억원)를 프로퍼블리카에 기부해 왔다. 샌들러 부부가 원한 것은 이익이 아니라 ‘사회정의’였다. 프로퍼블리카는 샌들러부부의 기부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더 많은 이들이 기부자로 참여하고 있다. 벤터 재단(The Benter Foundation), 포드 재단(The Ford Foundation)등 21개의 공익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물론 시민 후원금도 받고 있다. 후원 회원의 수는 매년 증가해 2009년에 100명이었던 후원자 수는 2011년 1600여명으로 16배 이상 늘었다.  프로퍼블리카는 기부에 의해 운영되는 탐사보도 전문 언론이다. 이들은 여러 단체와 시민들에게 받은 후원금 대부분을 기사를 위해 사용한다. 홍보부장 콜린스는 “예산의 15%만 운영비용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전부 기자들의 인건비와 취재비용으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프로퍼블리카의 운영비용이 모자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탐사보도에 있어 재정독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했다.  

▲ 제이크 번스타인을 취재하고 있는 특별기자단

90여개 언론과 제휴해 뉴스 공유

프로퍼블리카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은 바로 언론사와의 제휴와 뉴스의 공유라는 독특한 철학이다. 이들은 신문과 방송 등 90여개의언론사들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프로퍼블리카가 출고한 기사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과 같은 대형 언론사에 공급된다.

그들이 이처럼 무료로 기사를 공급하는 이유는 특종을 터뜨리고 주목받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익을 위해’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처만 명확히 밝히면 어느 언론사라도 그들의 뉴스를 전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물론 기사를 재판매 하거나 기사를 재편하는 등의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이같은 제휴는 그들의 기사가 더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했던 ‘월스트리트 머니 머신’도 뉴욕타임스의 홈페이지에 동시 게시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콜린스는 “우리가 좋은 뉴스를 갖고 있을지라도 독자들이 이를 볼 수 없다면 이는 무의미 한 것” 이라며  “좋은 기사를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많은 언론과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의 이직율은 매우 낮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는 모두 46명. 대부분이 오랜 기자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다. 그들이 프로퍼블리카로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로운 탐사보도를 하기 위해서다. 프로퍼블리카의 기자들은 어느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프로퍼블리카를 택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처우가 다른 언론사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프로퍼블리카는 돈 걱정 없이,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볼 것 없이 기사를 쓸 수 있는 몇 안되는 언론사다. 이러한 자유로움이 ‘월스트리트 머니 머신’과 같은 기사를 가능케 했고 지금도 여러 탐사 기사를 내 놓고 있다. 길게는 2년, 짧게는 한 달 정도 걸리는 취재 기간에는 독자들에게 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려는 기자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진실을 전하고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책임감이 이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 프로퍼블리카 디랙토리



번스타인 기자는 “자본주의가 고도화 될 수록 국가와 정부의 기능이 전문화되고, 커질 수록 탐사보도의 가치도 함께 커진다”면서 이제 저널리즘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프로퍼블리카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라는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 저널리즘의 희망이다. 이들은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무한증식을 거듭하는 자본과 권력 앞에서 기자들의 펜끝이 무엇을 어떻게 겨눠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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