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에서 내 안의 고요함과 만나다

▲ 대성석가사에서 모이게 된 한국인들 단체사진, 좋은 인연이 되어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우리대학에 처음 지원하게 되었을 때 주위로부터 들었던 소리는 ‘불교대학’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대학이 종교와 어떻게 관련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종교가 없는 나에겐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 등교하던 날 팔정도를 오르고 그 말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게 되었다. 팔정도에 있는 코끼리 가족상과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부처님 상을 보았을 때이다. 나와 불교의 인연은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네팔 여행을 마치고 인도로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이 끝난 후 완전히 녹초가 된 나는 약 일주일 동안 호스텔에서 편히 쉬었다. 네팔 포카라의 자랑인 페와 호수에서 보트도 타고 하얀 설산과 포카라 전경을 감상하며 패러글라이딩도 했다. 게다가 포카라엔 왜 이렇게 싸고 맛있는 곳이 많은지, 눈과 입 모두가 호강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역시 여행자에게 한 곳에만 오래 머무는 것은 독이 될 수도 있기에 슬슬 다음 목적지를 정해 떠날 채비를 하였다.
네팔 포카라에서 다음으로 향할 나라는 바로 인도. 지도를 펼치고 인도로 가는 길들을 살펴보던 와중에 눈에 띄는 지명이 하나 있었다. ‘룸비니’ 이 이름을 어디서 들어 봤던가 했더니 바로 책 속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석가모니의 탄생지였다. 그리고는 정했다. 이곳으로 가기로.
룸비니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단지 그 곳에 가면 대성석가사라는 한국 절이 있고 그곳에서 잠시 머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랫동안 휴식기를 가져서 그런가. 이유모를 자신감과 함께 새벽 로컬버스를 타고 룸비니로 향했다. 룸비니까지는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약 8시간 정도를 달렸다. 물론 오랜 버스 여행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던 나지만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 산비탈 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버스에서 잠을 제대로 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휘저으며(마치 Rocker처럼) 버스에 내 몸을 맡기니 정신은 점점 내 육체와 멀어져갔다.
힘든 길을 달려 도착한 룸비니, 이곳의 첫 인상은 ‘고요함’이었다. 사실 포카라에서 룸비니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는 없다. 중간에 내려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그 버스에서 내린 뒤 자전거 릭샤를 흥정해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들어가는 길은 길고도 복잡하지만 사원이 있는 지역에는 자동차들이 다닐 수 없게 만들어 시끄러운 기계소리가 전혀 나지 않는 아주 고요한 지역이다.
자전거 릭샤를 타고 찾아간 대성석가사의 모습은 매우 삭막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성석가사는 아직 완공된 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짙은 회색 돌로 지어진 3층 높이의 커다란 절에 겉에 아무 것도 칠해져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대성석가사의 첫인상은 짙은 회색이었다.

룸비니에서 느낀 고요함

대성석가사로 들어가 스님들께 인사드린 후 방을 배정받고 법당 안에 들어갔다. 대성석가사의 겉모습과는 달리 법당은 아주 잘 완성된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인사를 드린 뒤 방으로 돌아와 첫 날은 그냥 그렇게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난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드린 뒤 아침 공양을 받고 절 주변을 산책하다가 점심시간에 들어와 밥을 먹고 또 절 주변을 서성거리다 저녁시간에 들어와 밥을 먹고 예불을 드리고 방으로 들어와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셋째 날도 이렇게 별 일 없이 흘러갔다.
사실 룸비니의 경우 인도를 지나는 길에 잠깐 들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길어야 이틀 정도. 하지만 지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알 수 없는 기분이 나를 붙잡았다. 그 기분이 무엇일까? 새벽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밥을 먹고 절 주변을 산책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하는 것도 없는 시간들이었는데 몸이 게을러지기보단 오히려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모든 감각과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바로 아무 걱정이 없어진 고요한 상태에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잠잘 수 있는 곳이 모두 해결되고, 그 외에는 딱히 신경 써야할 것이 없는 상태, 즉 아무런 걱정이 없는 상태가 되니 놀라운 변화가 생긴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빡빡한 스케줄로 가득했고 약속이 없는 날에는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 시달렸다. 친구들을 만나도 머릿속은 걱정거리들로 가득 찼고 나에게 집중하기보다는 핸드폰을 만지며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알기보단 내 머릿속을 걱정거리로 채우는 것에 더 잘 훈련이 돼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활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나에게 대성석가사의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네팔 룸비니에서는 포카라에서의 휴식과는 또 다른 더 근본적인 휴식을 경험했던 것 같다. 자욱한 새벽안개 속 예불 종소리와 이곳을 떠나는 날 법당에서 홀로 했던 108배는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자 치유가 되었다.

잊을 수 없는 대성석가사에서의 108배

우리 동국인들도 종교에 상관없이 마음속의 걱정거리들을 비우고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그럼 본인이 걱정하고 있던 것의 해답을 더 손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머릿속이 걱정거리로 많이 찬 요즘 대성석가사로 돌아가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 산책을 하고 싶은, 그 때가 참 그리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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