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만해축전 현장을 가다

만해 스님은 우리대학을 대표하는 독립 운동가이자 문학가다. 그는 독립운동의 별로 스러질 때까지 한 평생 올곧은 신념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았다. 그의 삶은 활화산 같았다. 당시 식민지 사회를 뜨겁게 달군 활화산이었으며 연민으로 불타오르던 활화산이었다.
만해축전은 이와 같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인종·종교·국가를 초월한 생명존중과 평화사랑에 대한 실천 의지와 개혁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열리는 행사다.

어울림의 다시 만난 청년 만해

▲ 유심시조 낭송회가 진행되고 있는 북카페 깃듸일 나무

“샘물은 저를 뒤집을 줄 알아 샘물입니다. 푸름은 한 가지에도 같은 빛깔인 적이 없습니다.”
손택수 시인의 만해축전 축시는 말한다. 샘물은 저를 뒤집을 줄 알아 샘물이고 푸름은 한 가지에도 같은 빛깔인 적이 없다고. 만해축전은 만해 스님이라는 샘 안에 담긴 샘물이다. 샘물의 푸름 한 가지이지만 절대 같은 빛깔인 법이 없다.
지난해 설악산 신흥사 무산 오현 스님이 만해 스님의 모교인 동국대학교에 만해 마을을 기증한 이래 처음으로 우리대학이 주축이 되어 주최한 제16회 만해축전(8/11~8/14)은 어떤 푸름을 우리에게 선보였을까. 기자의 손끝에 아직도 선명한 이번 만해 축전의 푸름을 이곳에 그려본다.
8월 11일 만해축전의 첫날 만해마을은 우리대학 국어국문 문예창작 학부의 장영우 교수와 신달자 시인, 윤금초 시조시인이 수상한 제12회 유심작품상 시상식이 끝날 때쯤, 이미 만해마을은 어두워져 있었다.
만해마을에 내린 어둠은 일종의 커튼이었다. 두껍고 적막한, 그 커튼을 니르바나 오케스트라단의 첫곡 ‘Jazz waltz No.2(Shostacovich 작곡)’가 활짝 열어젖혔다.
전야제의 시작이었다. ‘My Way’, ‘오 솔레미오’, 푸르른날 등의 연주곡도 이어졌다. 화려하게 전야제의 막을 올린 니르바나 오케스트라단의 축하공연이 끝나자 북카페 깃듸일 나무는 시인과 연주자의 무대로 바뀌었다.
자칫 밋밋해 질 수 있었던 시낭송회는 두 연주자의 즉흥 음악과 어우러져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낭송이나 연주나 따로 존재해서는 들을 수 없는 시인의 노래가 북카페 깃듸일 나무에 가득했다.
이날 시낭송회에서는 김제현 시인의 ‘풍경’ 등 유심시조아카데미 소속 시인들의 시가 낭송됐다. 몇몇은 시낭송회에 심취했고 몇몇은 시낭송회를 배경삼아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밤이 깊어갈 수록 만해마을은 깨어나고 있었다.

시대와 소통하는 만해정신

▲ 북카페 깃듸일 나무에서 열린 원로·신춘문예 등단 시인 방담회

이튿날인 8월 12일, 아침이 밝자 북카페 깃듸일 나무는 다시 사람들로 가득찼다. ‘만해 시의 젊음과 영원성’을 주제로 원로·신춘문예 등단 시인 방담회가 열린 것이다. 이날 방담회엔 원로 시인으로 구중서(78, 문학평론가), 정진규(75, 전 시인협회회장), 신달자(71, 전 시인협회회장) 2014년도 등단 시인으로 김진규(25, 한국일보 등단), 최현우(25, 조선일보 등단), 최찬삼(50대, 문화일보 등단) 시인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김진규 시인은 “원로의 시적세계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하는 것이 신세대의 의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이날 북카페 깃듸일 나무는 세대의 벽을 뛰어넘은 소통, 원로 시인과 신춘 시인이 서로의 시적세계에 대해 진솔한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은 만해대상

▲ 제18회 만해대상 시상식

같은 날 제18회 만해대상 시상식도 우리대학 김희옥 총장과 김미영 강원도 부지사, 이순선 인제군수 등이 참가한 가운데 인제 하늘내린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날 수상식에서는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이 만해평화대상을, 시민사회운동가 이세중 변호사가 만해실천대상을 수상했다. 만해문예대상은 서예가 윤양희, 이집트 작가 아시라프 달리와 이란의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각각 수상했다. 또한 노란봉투 캠페인 동참 시민단체 <손잡고>가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시상식에서 평화상을 수상한 일분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쉼터 ‘나눔의 집’의 이옥선(88) 할머니는 “고마워유. 내가 할 말이 이것밖에 없어유. 정말 고마워유.”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만해축전은 무엇이든 잊혀지기 쉬운 시대에서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소외자들에 대한 연민 또한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화합 · 교류의 정신 확인한 만해축전

8월 13일 오후에는 님의침묵 전국 백일장이 시작됐다.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원고지를 채워 나갔다.
방금 전까지 이러 저리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도 얌전히 앉아 글을 지었다. 개울가 너머 물흐르는 소리, 풀벌레 소리, 새들이 우는 소리, 참가자들이 글을 쓰는 풍경마저 조용했다.
이날 저녁 열린 다문화가족예술제는 다양한 사람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한낮 종횡무진 뛰어니던 아이들도 무대 앞에서 앉아 공연을 구경했다. 베트남 여성들의 이국적인 무대부터 시작해 고향의 춤과 음악을 시연하는 이, 아직 서투른 한국어로 개그를 선보이는 이, 그리고 무대 위에 올라온 부모를 지켜보는 아이들까지, 각자의 풍경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무대가 되었다.

만해 스님의 입적으로부터 정확히 70주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 세월호 사건, 군 폭력 문제, 크림반도 사태…… 어느 때보다 만해 스님의 생명존중 사상과 평화 사상이 필요한 이 시기에 만해축전은 우리대학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만해축전은 중진 문인 내지 예술가들의 행사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우리대학이 주최한 이번 만해축전은 단순한 불교 또는 문화예술의 축제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화합, 그리고 소통의 자리였다. 단순한 행사라는 벗어나 참가자들이 만해사상 아래 자연스레 어우러지도록 유도하는 선양의 장으로 다시 태어난 만해축전은 선명한 푸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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