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원 국어국문 문예창작학부1

사랑의 방문은 우리를 가슴 뛰게 한다. 그것은 가장 본능적인 것 앞에서 한없이 연약해지는 인간의 본성이다.
지난달 14일부터 18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앞에서 한국인들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인들은 동일한 상처의 기억으로 잠시동안이나마 단결되는 경험을 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내보여 치료받고 싶은 마음과, 그 내막까지는 들키고 싶지 않은 상반된 욕망 아래에서.
그러나 흔히 말하듯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교황의 행보에 우리들조차 지나쳤던 한국의 병명들을 상기했다.
교황의 이미지는 교황이 가는 곳 어디서나 쉴 새 없이 터지던 기자들의 플래시라이트보다 훨씬 환하고 끈적끈적하게 우리에게 와 닿았던 것이다. 타인의 행보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돌이켜볼 때 우리는 나비의 시체를 볼 때처럼 아름다워서 몸서리치는 것을 느낀다. 
교황의 행보 중 단연 가장 많은 이목을 끌었던 것은 세월호 유족들과의 만남이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한 달이 넘도록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유민아빠’와의 짧은 대화를 담은 동영상이 화제로 떠오를 때, 그 이면에 꼬리처럼 무수하게 매달린 슬픔의 의미들을 읽어내야 할 사람들이 정작 어디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함께 따라온다.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딸의 이름을 마치 대명사처럼 세상에 소비시킨다는 것, 등가교환이라도 하는 것처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식욕을 참아내며 뒤바뀐 시간을 견딘다는 것…. 무수한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광장에 응어리진 상처처럼 유민아빠가 있었고 교황이 그 앞에 다가서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트위터 팔로워는 한국인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한 며칠 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는 천주교로 개종을 희망하는 이들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것이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몇 백 년 전, 신화가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고 인간이 끊임없이 신의 품속으로 회귀하던 시절, 즉 종교의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워 구원을 얻으려면 두 눈을 감고 높은 환상 속으로만 올라가야 했던 시절, 한국인들이 보기에 교황의 방문은 마치 어느 날 문을 두드린 천사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야할 때이다. 광장과도 같은, 개인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비극을 관조하며 감정의 바깥을 빙빙 도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 우리에게 사랑이 사랑으로 옮겨져 가는 것의 따뜻함을 교황은 가르쳐 주고 떠났다. 광화문 광장은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바뀔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감옥을 공원처럼 여기며 살고 누군가는 공원을 감옥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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