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등역, 마음 속의 '고향역'

▲ 황등역 승강장 철거 후, 역명판과 벤치는 역 한쪽에 버려져 있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이쁜이 꽃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가 핀 고향역, 그리고 고향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노래. 지금도 노래방 애창곡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가수 나훈아 씨의 ‘고향역’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익산시 소재 호남선 황등역이다. 가을이나 명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의 탄생지가 여기 있다.
‘고향역’은 작곡가 임종수 씨가 만든 곡으로 그의 학창시절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중고등학생 시절 고향인 순창을 떠나와 익산 삼기면에 거주했다. 그리고 매일 황등역에서 이리역(현 익산역)까지 기차로 통학했다. 그는 기차를 타면서 역 주위의 코스모스를 보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고향의 부모님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한다. 후에 그가 가수 나훈아 씨의 제안을 받고 곡을 쓰다가 고민하던 중 학창시절의 경험을 떠올렸고, 그 결과 ‘고향역’이 탄생했다. 이 노래는 1972년 발표돼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이 노래가 유명해진 이유는, 당시 우리나라의 사회적 상황 때문이다. 공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중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향했다. 꿈에서라도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어 하는 사람들, 고향의 풍경을 품고 있는 사람들. 이들에게 힐링이 필요했고, ‘고향역’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하지만 현재의 황등역에서 ‘고향역’의 분위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승강장이 있는 역의 모습은 이미 볼 수 없었고, 역명판과 벤치는 한 쪽 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2008년 여객취급이 중지된 탓이다. 역 주변에 기념비나 안내문이 있을 법한데, 눈 씻고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인근의 익산역이 고향역의 무대라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코레일에 따르면 ‘고향역’ 노래비를 건립하고 익산역-황등역 구간에 코스모스를 심는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현재 사업추진의 어려움으로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그래도 황등역은 버려지는 수모를 겪지는 않았다. 2011년 9월부터 황등역은 물류담당의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KTX가 익산역에 정차하게 되면서 익산역이 담당하던 화물열차를 황등역이 담당하기 시작했다. 승강장이 철거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선로가 늘어나면서 규모가 커졌고 화물차 검수부도 자리를 잡게 됐다. 역을 오고가는 승객의 이야기는 옛말이지만 아직까지 잘 버티는 황등역은 누군가의 고향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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