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설렘으로 바꿔준 그 곳, 히말라야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130m에 오르니 6일 간의 대장정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오늘은 새로운 시작이 있는 날, 바로 개강 날이다. 새로운 시작은 항상 설렘을 안겨주고 다음에 있을 날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꽉 채워준다. 사실 이런 개강일이 되면 항시 생각나는 것이 바로 신입생 시절 첫 등교 때다. 그 때는 우리대학이 어쩜 그렇게 커보이던지, 그리고 비탈길은 왜 이렇게 가파르던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해 마음이 너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설렘이 오면 삶은 활기를 찾는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커보이던 학교가 너무 익숙해져 우리 집 앞 학교가 되었고, 높아보이던 비탈길도 이제는 그저 간단한 운동을 시켜주는 언덕으로 바뀌었다. 뭐든지 이렇게 익숙해지면 처음 느꼈던 설렘도 기대도 잊혀지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설렘이 오면 삶은 다시 활기차지는 것 같다.
약 한 달여 간의 동남아 여행,  점점 여행이 질려가기 시작했었다. 뭔가 동남아의 비슷한 패턴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탓도 있고, 너무 휴양 위주의 여행이라 쉽게 질려버린 탓도 있었다. 그래서 난 과감히 결정했다. 동남아를 떠나 조금 더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향하자고, 그 곳이 바로 네팔이었다.
네팔은 인도와 붙어있는 곳이라 그 문화가 인도와 비슷한 점이 참 많은 나라인데, 다들 인도를 상상하면 알겠지만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조금 더 새로운 것을 원했던 나에겐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지고 온 곳이기도 하다. 향신료가 강한 음식들부터 시작해 사람들의 부리부리 한 눈빛, 무질서한 도로, 길거리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던 오래된 유적지, 마을 어디서든지 보이는 히말라야의 만년설들까지, 이곳은 정말이지 새로운 것들 투성이었다.
이 많은 것들 중에서도 제일 으뜸인 것이 네팔의 자랑 히말라야이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보니 트레킹 코스도 초, 중, 고급으로 다양하게 나누어져있다.
물론 남산 자락의 동국대를 매일 오르내리던 나의 단단한 허벅지로 중, 고급을 도전할까 생각해봤지만 천식에 가까운 허약한 내 기관지를 생각해 망설임 없이 초급 코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산의 자존심이 있어 초급 코스인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두 곳 다 돌고 오는 것을 선택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내내 쏟아졌던 불평
이런 저런 준비를 마치고 출발해 푼힐과 ABC를 향해 올라갔다. 열심히 산을 오르는 이 기분은 뭐랄까,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난 도대체 이 힘든 길을 왜 오르고 있는 것일까. 가이드북에서 말했던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가 맞는 것인가. 온갖 불평을 쏟아내며 올랐지만 나중에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코마 상태에 빠졌다.
사실 푼힐은 2박 3일 코스의 3,210m,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5박 6일 코스의 4,130m이다. 그런데 난 이 두 곳을 6박 7일에 돌기로 마음먹고 다른 여행자들에게 장비를 빌렸다.
그리고 이 장비들을 돌려주기 위해 난 두 곳을 정해진 기간 내에 다 돌아야 했었다. 분명 앞서 다녀온 사람들이 충분한 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왜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은 건지 많은 원망을 하면서 산을 올랐다. 하지만 푼힐과 ABC의 정상에 다다랐을 때의 쾌감은 또 다른 축복이었다.
세계 7대 일출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푼힐에서의 일출, 뼈를 애는 듯한 추위를 참아가며 기다린 해가 뜰 때의 그 감동은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해가 뜨기 전 하늘은 무지개색이 된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다.
산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적응이 된 것일까, 초반에 그렇게 하던 불평도 자주 빠지던 코마 상태도 많이 나아졌다(아예 없어지진 않더라). 그렇게 계속 걸음을 재촉해 난 ABC에 다가갔고 결국 6일째 되던 날 새벽, ABC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보았던 일출, 떠오르는 햇빛으로 인해 황금색으로 불타오르던 주위 설산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포터들에게 배운 행복의 의미
산을 오르며 쿡쿡 쑤셔오는 내 몸의 고통들이 날 힘들게 했지만 그럴 때마다 고개를 들어 주위의 설산을 보면 또 다시 치유가 됐다. 힘들게 걸어가고 있을 때면 항상 웃는 얼굴로 내 옆을 지나가던 포터들. 이들은 30kg에 가까운 짐을 들고 여행자들을 대신해 짐을 나른다. 그렇게 일하고 하루에 받는 급여는 10달러가 안 된다.
그래서 포터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일하고 하루에 10달러도 못 받으면 화가 나지 않느냐고. 그러니 이 포터들이 그런다.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되는 말이었다.
우린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날이 왔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또 익숙해질 것이 분명하고, 처음에 가지고 있던 설렘과 기대는 우리의 일상으로 변해갈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또 주위의 친구들을 둘러보면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감사함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한 학기도 힘을 내 꼭 목표한 고지까지 우리 모두 오를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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