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재 영화감독

늦은 밤 연구실에서 편집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 삼십대 후반의 점잖게 생긴 기사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혹시 대학 교직원이세요?” “네”
“그러시군요. 참 인상이 좋아 보여서요…헌데 신앙이 있으신가요?” “네”
“신앙이라고 다 같지는 않죠”
이후는 예상대로였다.
“성경에 이미 다 있어요. 오로지 진리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선생님이 죽고 나서야 믿던 그 신이 비로소 가짜였다는 걸 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죽은 뒤에 지옥을 가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면 뭐합니까?”
기실 이 같은 경험을 여러 번 해봤다. 특히 필자의 전작인 ‘사이에서’, ‘길 위에서’를 만든 뒤에 ‘왜 구복신앙을 찍느냐’, ‘왜 훌륭한 신앙을 두고 사이비 종교영화를 만드느냐’, ‘하나님 사업을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는 등의 직설적인 선교를 많이 경험했다. 만약 내가 사장이고 내 직원이 이런 식으로 회사를 홍보한다면 바로 해고시켜버릴 것이다. 2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가 위기는커녕 여전히 성장세에 있다면 그 역사에 대한 권위와 자긍이 필요하지 않을까?
얼마 전 스스로 ‘종의 종’이라는 교황님이 다녀가셨다. 나는 그 분의 강론에서 성경말씀을 그다지 듣지 못했다. 때로는 번역되지 않은 그 분의 표정만으로도 불자인 나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그 시대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나아가 영적 성장의 전환점이 되게끔 이끌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아닐까?
한 여행 작가가 만난 세 사람의 젊은 여행자가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로 다른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달 이상 함께 걸으며 서로의 종교를 이해해가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옮기자면 “21세기의 진정한 선교는 자기가 믿는 종교를 강권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믿는 종교를 보다 신실하게 믿게끔 도와주는데 있다. 무슬림은 보다 무슬림답게, 크리스찬은 보다 크리스찬답게, 무신론자는 자신의 신념을 보다 가치있는 쪽으로 성장하도록 서로를 도와주는 게 진정한 선교다”
현대의 주류 종교들은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몇몇 문제들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질 성격도 아닐 뿐더러, 몇몇의 반박논리로 쉬이 부정될 대상은 결코 아니다. 나아가 믿음의 증거가 ‘믿음의 전달’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 수많은 좋은 말씀이 사람을 믿음으로 이끌게 하기 보다는 타인을 감화시킬 만큼 올바른 실천과 행적으로 다가올 때 그 종교와 종교인이 보다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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