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외출 하셨을 때, 방을 치우다가 오래 묵은 종이 뭉치를 발견했지요. 그것은 소설처럼 쓰여졌는데, 출가하기 전의 고뇌와 슬픈 참회가 있는 글이었지요. 그 글에서 주인공은 못된 짓만 일삼는 불효자였는데, 어느날 만취에 고함치며 그것도 몇 달 만에 집에 들어오니 동생이 어머니를 붙들고 울고 있었던 것이에요. 술김이나마 이상한 예감에 동생에게 다가가보니 어머니가 숨을 거둔 거였어요. 주인공은 크게 뉘우치면서도 대드는 동생에게 같이 감정을 폭발시켰어요. 형제는 서로 잘못을 전가시키며 싸웠던 것이지요.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난투극을 하는데, 힘이 더 센 형이 동생의 목을 조르는 장면들은…”

행자의 말을 들으며 그는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직감이었다. 모자 살해사건, 그가 경찰에 투신하여 담당한 가장 참혹했던 미해결사건. 범인의 별명은 이무기였다. 이무기, 그것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야기하는 행자의 음성에서 더 이상 방심하지 않고 현혹되지 않았다. 직업적인 근성은 언제나 예측치 않은 때에 큰 수확을 거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산을 찾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님으로 변모한 살인범. 저 목탁소리는 죄악을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아내는 밤의 꽃이나 될 그런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농락할 수 있었지만 그녀와 결혼했고, 결혼 후에는 일체 과거를 들추지 않았다. 그는 결혼 전의 아내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가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사랑보다는 동정과 비밀로 지켜져 온 가정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뛰어난 여자였다. 억척스러우면서도 품위가 있었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그러기에 그는 아내에게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럴수록 아내의 웃음과 엉덩이 흉터는, 결혼 전 무슨 일 하는 여자인 줄 알면서도 출생(出生)을 모르듯, 커다란 미궁(迷宮)에 빠지게 하였다.

그는 성급하게 스님을 범인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그의 경험으로 보아서 이런 예감은 정확했다. 공소시효가 다 되었을 만큼 오래된 사건이지만 악에 대한 경종을 위해서 당장 체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왜 그러시지요?” 그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고 행자가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는 이내 행자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힘이 솟았다. 숨이 가빠지며 피가 끓어올랐다. 그의 경찰생활에 이렇게 흥분해보기는 처음이었다. 확실치도 않은 단서에 그는 무섭게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난 형사얏! 바른대로 말햇!”

행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행자의 눈을 깊숙이 노려보았다. 마침내 행자가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선생님, 놓고 이야기하십시다. 왜 갑자기 흥분하는 겁니까?”

행자는 애써 떨림을 감추고 있었다.

“그래, 희대의 살인마가 나의 입에서 칭찬되어야 한단 말이냐?”

“…”

그는 고함을 치며 멱살을 바짝 조여잡고 흔들었다. 행자는 아예 몸을 맡겼다. 행자의 눈에 촛불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흔들렸다. 그것은 불빛보다 더 뜨겁게 반짝이다가 불 밑을 타고 흘렀다.

멱살 잡은 손을 풀었다. 공연한 사람에게 화를 낸 것이 무안했다. 조금 차분해졌지만 그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도리어 그의 숨이 막힐 지경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산의 음악은 사라지고 가슴을 에이는 겨울바람만 소용돌이 쳤다. 다시금 산의 비명소리가 소름끼치도록 가까이서 울려왔다. 거대한 산이 악령처럼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방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듯 했다. 그는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는 누구를 향할지 모를 분노로 서열에 들뜬 눈을 어느 곳에 맞출지 몰라 허둥거렸다. 행자는 촛점잃은 눈동자를 내리깔고 있었다. 서로 말이 없는 공간은 행자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었으며 엄청난 힘이 그의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그제서야 아직도 한결같은 염불소리가 악마의 주문같이 들려왔다.

방문을 열어 제쳤다. 산은 하얀 옷을 입은 거대한 아귀처럼 우뚝 서서 탐욕스런 숨소리로 나무위의 눈을 떨구고 바위 위의 눈을 일으켜서 함께 뛰어놀았다. 휘날리는 눈보라가 방으로 몰려오는 듯하다가 방문 앞에서 멈추었고, 눈은 방에서 새어나간 불빛 속에서 나비처럼 춤추다가 거대한 메뚜기 떼로 변하여 그에게 덤벼들었다. 이무기.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웃고 있었다.

…나는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 누구를 만날 일도 없고 누구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나는 혼자였다.

담배를 물었다. 마음이 가라앉아갔지만 아직 머릿속은 담배연기 같은 안개가 가득하였다. 연신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담배연기를 보면서, 그는 문을 닫았다.

갑자기 행자가 자세를 허물어 뜨리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세상의 온갖 죄를 혼자서 짊어진 양, 흐느낌은 가슴 속을 후비는 절규였다. 그는 행자에게 보인 격양된 행동이 후회스러웠다. 그는 뜻하지 않은 승진의 행운을 잡았지만, 행자는 반갑게 맞이한 손님 덕분에 자신의 정신적 지주를 잃게 되었다. 진실이나 비밀을 털어놓은 것은 곧잘 좋은 분위기를 수라장으로 만들고는 하는 것이었다.

행자는 나이든 사람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행자의 친절은 결국 그 자신에게 죽는 날까지 지울 수 없는 멍에를 씌웠다. 그는 눈을 감았다. 진실하려는 방황과 몸부림이 있었지만 모두가 이런 식 이었다. 바람소리가 사람들이 싸우고 모략하고 아우성치는 소리로 들려왔다. 그는 직업과 아내의 틀 속에서 살고 있었다.

목탁소리는 벌떼의 독침처럼 끊이지 않고 뇌수를 파고들었다. 이무기는 기껏해야 마흔이 갓 넘을 나이였다. 끈질기고 교묘한 놀라운 놈이었다.

그가 행자의 손을 잡았다. 행자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행자님, 할 말이 없습니다. 흥분하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선생님, 제가 죽일 놈입니다.”

행자가 고개를 쳐들며 별안간 그를 뚫어질 듯 응시하였다. 그는 행자에게서 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사람을 그리워하던 행자는 이제 절망적인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행자는 그의 손을 더욱 단단히 죄어왔다.

“그동안 괴로웠습니다. 난 처음부터 선생님이 심상치 않은 분인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을 믿고 싶었다구요. 못된 과거를 반성하며 나의 의구심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에요. 그 살인범은 바로 납니다.”

행자의 참담한 표정과 절규에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행자는 손을 놓고 다시 말을 이었다.

“스님은 칠순이 넘은 노스님입니다. 스님은 이 이무기를 이제껏 보살펴주었지만, 나는 처절하게 해칠 수밖에 없었다구요. 내가, 어머니를 죽이고 동생을 죽인 놈이요. 나는 자살할 수도 없는 나쁜 놈이라오.”

“……”

“스님은 나의 무엇을 믿었는지 출가를 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스님과 약속하기를, 스님의 정근이 끝난 후 계를 받기로 했습니다. 긴 세월이었지요. 저 목탁소리가 그치는 날 법적인 나의 죄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며칠을 이겨내지 못하였어요. 아니,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법의 심판으로 속죄하겠습니다.”

이무기는 처절히 울부짖으면서도 말을 마쳤다. 그러고 머리를 벽과 방바닥에 부딪쳐 댔다. 그때마다 머리의 흉터가 빛났다.

수많은 독벌레가 온 몸을 쪼아대는 느낌이었다. 그는 혼란이 극에 달하였다. 촛불이 흔들렸다. 바람소리에 방이 기우뚱 거리는 것 같다. 스님의 독경소리가 남아 있었다.

밤이 아주 깊어져 갔다. 밧줄에 손이 묶인 이무기는 아직도 엎드려 등을 들썩였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무기의 울음이 작아지면서 목탁소리는 더욱 뚜렸했고 독경소리는 한층 처량하게 들려왔다. 그는 스님을 보고 싶었다.

밖으로 나와 옆방을 향해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도리어 그는 자신이 참담한 심정이었다. 문을 열어도,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문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무기의 말대로 노스님이었다. 깊게 파인 주름살은 수도승의 긴 연륜을 말해주고, 겸허하게 경을 읽는 스님의 모습은 석불과도 같았다. 촛불이 비친 붉은 스님의 얼굴은 그대로 하나의 불꽃이었다.

그는 문득 의문이 일어났다. 이무기는 왜 묻지도 않은 비밀을 털어놓았고, 스님은 살인범의 재능이 아까와 이렇듯 모질도록 보살펴주었을까. 이무기, 그 긴 세월 가운데 며칠을 못 견디고 수도를 포기한 이무기, 이무기는 처음부터 나의 신분을 알았었다. 그러고 힘으로나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나를 처치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눈보라가 얼굴을 할퀴었다. 바람 속에서 한껏 시달려보고 싶었다. 전선을 담은 산은 죄 많은 사냥꾼을 가슴으로 안았다. 산은 숭고함이 있고 바람이 있고 무서운 힘이 있었다. 눈이 내림으로써 악한 것, 선한 것 모두가 덮여졌다.

눈으로 세례 받은 몸을 털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신음 같은 잠꼬대를 하는 이무기는 새우처럼 쓰러져 자고 있었다. 가만히 이무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암자를 발견했을 때 본 얼굴보다 열 살쯤은 나이 들어 보이는 이무기답게 추한 얼굴이었다. 그는 아내의 이 가는 소리를 싫어 할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고뇌보다 진한 연기를 내뿜으며 담배를 피우고 또 태웠다. 바람은 천식 환자의 가래끓는 소리처럼 요란한데, 노스님의 호흡은 아직도 낭낭하게 계속되었다.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오랫동안 이무기의 잠든 얼굴을 주시하며 깊은 생각에 젖었다.

나와 이무기 둘 가운데서 누가 더 죄인일까?

죄를 진 사람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았다. 결혼 전 아내에게도 애인이나 오빠가 있었겠지? 집에 돌아가면 아내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잠들지 않은 영혼은 스님의 염원과 함께 이제 야 성스러운 산을 알 수 있었고 아내의 얼굴을 용서할 수 있었다.

이무기의 지친 얼굴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방안이, 산이, 온 세상이 환해지고 어느새 바람도 멎었다. 목탁소리, 염불 소리에 그의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뜨거워져 갔다. 숭고한 얼굴을 바라보는 기쁨에, 거룩한 빛에 젖어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날이 밝아오자, 그는 이무기에게서 눈을 떼고 일어나 외투를 걸쳤다. 그런 후에도 한참동안 빛을 잃어가는 촛불 속에서 이무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산의 설경이 눈부셨다.

그는 이제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변하는 얼굴을 가진 산은 언제나 멀면서도 가까웠다. 산에서는 이무기가, 사냥꾼 같이 승천하는 용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잠든 얼굴을 떠올리며 목탁소리를 뒤에 남기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새벽의 바람은 혹한 그대로였지만 그는 추운 줄도 모르며 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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