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학술상 창작분야 가작 1석

참으로 얼척없다. 이런 곤혹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빛? 세월? 그림자? 가당찮다. 우선은 내게서 떠나 나를 빤히 쳐다볼 일이다.

내가 먼저 맨발로 찾아가기 전에는 영영 해후하지 못할 벗들에 관한 상투적인 안부로 전전긍긍하다. 그들은 종래 소식이 없다. 멀리 여행을 떠났거나 아니면 아파서 누워있다. 하릴없이 나는 헌혈차에 가서 피나 뽑아주고 온다. 이윽고 쓰디쓴 음주와 살인적인 흡연. 나는 내 앞에 도사린 거대한 壁(벽)을 꽝꽝 두드리며 가끔 천재들의 서글픈 요절을 생각하다.

내가 서있는 곳은 하늘을 향한 요원한 尖塔(첨탑)의 끝이 아니라 고작해야 지상 4.5m의 육교위라는 사실을 황망히 깨닫다. 순간, 명멸하는 차량들의 번뜩이는 헤트라이트 속에 도사린 음험한 잔인성에 굴복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추락을 감행하다. 그리하여, 어느 이끼 낀 바위에 化石(화석)으로 남아있을 날짐승의 깃털마냥 내 무딘 손가락 마디 하나 계절의 문턱에 비스듬히 찍어놓다.

맹세컨대, 나는 文學(문학)이 契(계) 타고 집파는 짓거리라면 차리리 속편하게 神(신)이나 믿겠다. 뽑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精進(정진)을 약속함으로써 나의 깔죽없는 마음을 속이고 싶지 않다. 정말 훌륭한 작품은 아직도 누군가의 퀴퀴한 서랍 속에 秘藏(비장)되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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