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이란 하나의 집을 지어 올리는 것"

▲ 이장욱 국어국문 문예창작학부 교수
 글을 쓰는 것은 하나의 주어를 만드는 일… 학생들이 새로운 술어를 만드는 주어들이되었으면

“창작이란 하나의 집을 짓는 거예요. 허허벌판에 작품을 지어 올리는 거죠. 집이 완성되어도 그곳에 안주할 수 없어요. 완성되면 다시 새로운 집을 지으러 떠나야 하죠. 이렇게 새롭게 집을 지어 올리는 반복의 과정 속에서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 같아요.”

시, 소설, 평론 이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물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이 세 분야에서 모두 활동하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올해 새롭게 우리 대학의 국어국문·문예창작 학부의 교수로 부임한 이장욱 교수다. 벌써 20년 가까이 문단에 몸을 담고 있는 이장욱 교수는 1994년 ‘현대문학’에서 시로 등단, 현재까지도 시, 소설, 평론 세 분야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생년월일’과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등이 있는데 시나 소설 두 분야 모두에서 부드러운 문장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것이 매력이다.

현재 우리 대학에서 소설창작을 지도하고 있는 이장욱 교수는 계간잡지 ‘21세기 문학’에 발표한 단편소설 ‘우리 모두의 정귀보’로 제8회 김유정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작품에서 이 교수는 특유의 서정적 문체로 정귀보라는 한 화가의 삶과 죽음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려내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과연 이 교수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평소 경외하던 작가의 문학상

약속시간 5분 전, 조금 일찍 찾아간 이장욱 교수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평소 문학을 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특별한 매력을 풍긴다고 들었는데 이장욱 교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제8회 김유정 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약간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기자의 첫 질문에 이 교수는 개인적으로 김유정 작가를 흠모해 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유정 작가는 제가 가지지 못한 것들은 가진 작가였죠. 김유정 작가의 토속적이면서 해학적인 정서는 제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가지지 못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김유정 작가에 대한 경외 같은 게 있어서 이번에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더 기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새로운 집을 짓기위해 옛 집을 떠난다

이번 작품 ‘우리 모두의 정귀보’는 이장욱 교수의 이전 작품들과 확실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바로 글 속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유머러스함’이다.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이 교수의 이전 시집 ‘생년월일’의 마지막 장엔 ‘나는 처음 보는 집으로 들어간다./주위를 둘러본다./벽이 사라진/텅 빈 세계다.’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고 한다. 이 구절처럼 이 교수는 시든 소설이든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새로운 집을 지어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새로운 집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막상 그곳에 들어가 편히 쉴 수 없다며 항상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완성된 집을 떠나는 것이 창작의 기본임을 이야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이번 작품 ‘우리 모두의 정귀보’ 또한 이처럼 ‘처음 보는 집으로 들어간다’는 과정을 거쳤음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발표한 작품 ‘우리 모두의 정귀보’도 마찬가지로 이전에 지은 집을 떠나 새롭게 지어 올린 작품이죠. 이런 새로운 모습이 사실 착안의 단계부터 결정된 것은 아니에요. 새집을 지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이 들어간 거죠. 아마 또 다른 작품을 쓰게 되면 그 작품에 맞는 새로운 스타일이 들어가겠죠.”

또한, 이번 작품에 대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만약 작가가 작품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작품의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본인의 작품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는 겸손한 문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의미를 찾기보다는 의미를 만들어

이 교수에게 있어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의표를 찌르는 답변이 돌아왔다.“의미가 있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기 보다는 의미를 만들기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거죠. 문학도 똑같은 것 같아요. 창작의 괴로움과 싸워간다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거죠. 미리 전제되어 있는 의미가 문학을 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아니에요.”

특히 시와 소설을 둘 다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묻자 “소설과 시를 함께 쓰게 된 지 10년 쯤 지났다”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제 몸의 장르로써 써 왔어요. 그리고 소설은 대학교 때부터 동아리에서 습작을 했었죠. 정말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둘을 함께 쓰는 느낌에 대해 굳이 말하자면 시와 소설이 필요로 하는 영혼의 근육이 각각 따로 있는 것 같은데, 10년 쯤 함께 써오다 보니 이런 두 가지 형식의 글쓰기가 몸에 배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렇게 이 교수의 삶은 문학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그에게 시와 소설이란 무엇일까.

“시는 내 몸 가장 가까운 곳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해요. 아마 죽기 직전에 침대에 누워서도 쓰고 있는 것이 시 일 것 같다고 생각하죠. 소설은 조금 다른데 소설은 일종의 직업, 일의 느낌이 있어요. 한마디로 몸에서 뗄 수 없는 직업이자 일인 것 같아요.”

새로운 술어를 만드는 주어가 되어라

올해 새로 우리 대학에 부임한 이장욱 교수가 바라는 미래는 어떤 미래일까.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던 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엔 특별한 방법은 없죠. 개인적으로 학생들과는 사제의 관계보단 글을 쓰는 동료라고 생각하며 만나고 있어요. 글을 쓰는 데에 있어 기술적인 걸 빼면 우열관계는 전혀 없기 때문이죠. 문학이란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해줄 수 있는 학문이 아닌 만큼 저도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이어 이 교수는 문학은 사회와 제도가 만든 틀이지만 사회와 제도에 묶여 있지 않도록 유도한다며 “가만히 있어라 라고 하는 말에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있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 문학”이라고 이야기 했다.

“글은 쓴다는 것은 하나의 주어를 만드는 일이죠. 문학을 하는 학생들이 새로운 술어를 만드는 주어들이 되었으면 해요.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글을 쓰는 동료로서 빨리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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