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넘어 탄생한 교훈의 백과사전

“가장 나쁜 정치란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

‘사기열전’에 수록된 ‘화식열전’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저자 사마천이 스스로 밝혀놓은 정치에 대한 소견이다. 여기서 그는 “정치를 잘하는 자는 자연스럽게 백성을 이끌어 깨우치게 하는 자고, 못하는 자는 백성들과 다투는 자다.”라고 말한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체계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국민들 눈 가리기에 급급한 현 정권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말이다. 놀라운 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한 시기가 기원전 100년 즈음이라는 점이다. 2천 년도 더 전에, 정치가 백성을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오늘날 ‘사기’가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다.
 
‘사기’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기원전 145년 경~기원전 86년 경)이 궁형(거세하는 형벌)의 치욕을 견뎌내며 기록한 역사서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역사서를 집필하던 도중, 한 무제의 미움을 사 궁형을 당하고 만다. 겨우 목숨만을 건졌음에도 사마천은 고통을 견디어 내며 자신의 남은 과제를 완수한다. 마치 드라마와도 같은 사마천의 일생은 ‘사기’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기’는 상고시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다루며, 중국 뿐 아니라 흉노, 고조선의 역사와 풍습까지 다루고 있다. 전 130권이며, 왕들의 연대기를 기록한 ‘본기’, 각 시대를 연표로 정리한 ‘표’, 국가 제도의 변천을 기록한 ‘서’, 제후들의 연대기를 기록한 ‘세가’, 그리고 총 70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가진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왜 하필 ‘사기열전’을 읽어야 하는가? ‘열전’은 왕과 제후 이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대상은 군인, 학자들부터 일반 서민까지 폭넓다. 대개의 역사서들은 국가 지도자와 그 주변에 대해서만 다루지만, ‘사기열전’은 미미한 개인의 일까지도 기록한 것이다. 열전을 구성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특별한 인생역정을 가지고 있어, 이를 읽는 것만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난 듯하다. ‘사기열전’을 ‘인간 백과사전’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백이‧숙제의 ‘백이열전’부터, 사마천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태사공자서’까지, 선인들의 삶과 지혜가 담긴 교훈의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덧붙여, ‘사기열전’에는 여러 고사성어들의 유래가 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맹상군 열전’에서 ‘계명구도(鷄鳴狗盜, 천한 재주로 남을 속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가, 평원군‧우경 열전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눈에 띈다는 말)’가 나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어들의 근본을 찾아보는 것도 ’사기열전‘을 읽는 또 하나의 숨은 재미일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