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 ‘간송’이 실천한 문화 독립운동

▲ 문화 독립운동에 앞장선 간송 전형필 선생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석봉 한호,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이 유명한 작품들이 한 사람에 의해서 수집 됐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수장가 간송(澗訟) 전형필(1906~1962) 선생이 바로 그 인물이다. 간송은 1930년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맞서 거부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지키는 데 앞장섰다.
 

간송은 1938년 성북동에 ‘보화각’이라는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을 지었고 후에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의 후손들은 1971년부터 매년 봄, 가을 2주씩 특별 전시회를 열어 소장품들을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해왔다.

이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간송 미술품들의 첫 대규모 외부 전시이다. 낡고 좁은 성북동 미술관에서 많은 관람객들을 수용하는 데에 한계를 느낀 것이다. 성북동의 전시회를 보기위해 몇 백 미터의 긴 줄을 서서 기다린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의 대표적인 첨단 건물인 DDP에서 몇 백 년 전의 고 예술품이 전시된다는 점이 ‘어울리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전시에는 분명한 의의가 존재한다. 우리는 간송의 수집물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내재된 문화 창조의 능력을 새롭게 깨닫게 되고, 그것은 현대 디자인 창조에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6월 15일까지의 1부 전시는 간송의 주요 수집일화들을 중심으로 간송의 정신을 재조명하고 7월 2일부터 9월 28일까지 열리는 2부 전시는 간송의 주요 소장품을 통해 우리 민족 문화재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일깨워줄 것이다.
 

이번 1부 전시는 ‘간송이야기, 길을 열다, 지켜내다, 찾아오다, 훈민정음’의 5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테마 ‘간송이야기’에서는 간송의 개인사와 그의 작품이 중심이 된다. 예술가 간송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수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두 번째 ‘길을 열다’ 테마에서는 8m 길이의 현재(玄齋) 심사정의 ‘촉잔도권’을 볼 수 있다. 촉 지방의 험준한 산과 기암고봉, 깊은 계곡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세 번째 테마에서는 경성의 경매소에서 낙찰 받아 지켜낸 작품들이 중심을 이룬다. 해외에 반출된 작품을 찾아온 네 번째 ‘찾아오다’테마에서는 혜원(蕙園) 신윤복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월야밀회’는 뛰어난 구성감각과 과감한 채색으로 대담하면서도 개성 있는 혜원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 ‘훈민정음’테마에는 간송이 가장 아꼈다는 ‘훈민정음해례본’이 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속에서 이 책을 간신히 얻게 된 간송은 해방 후에야 이 책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그때서야 한글창제 원리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했다. 이 책을 마주하고 서있으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 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 DDP 전시를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간송의 수집물을 접하고 간송의 정신과 우리 문화재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평일에는 시간대 별 도슨트가 있으니 가급적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천천히 전시장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한 사람의 의지와 실천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귀중한 정신과 보물들을 남겼는지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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