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미 그림터화실 원장, 미술학과 90졸

“동국대 신문사 기자 000입니다,”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를 받고, 돌아서는 귓가에 아련히 들려오는 노래 소리...
(♬ 아주 ~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 그럼 ~ 무엇이 살고 있었을까 ~ ♪♩)
합격자 발표일. 숨 가쁘게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 머리 위로 경쾌하게 들려오던 노래. 교내 방송국에서 들려주는 노래에 이끌리듯, 숨 고르고 올려다 본 하늘은 눈부시게 청명했다.
(♬ 땅속~을 뒤져보면 화석이 많이 나오는데 ~♬♩)
졸업한지 25년 전의 대학, 뒤죽박죽 엉켜있는 80년대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캠퍼스의 축제와 흥겨운 응원가로 하나가 되던 대학야구.
전시회 준비로 여념이 없던 실기실 밖, 대자보 앞에서 격앙 되고 분노하던 학우들.
난무하던 화염병과 최루탄을 쏘아대며 곤봉을 휘두르는 전경들 사이에서 갸웃거려지던 혼란.
평온과 화려함으로 포장된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그 안에서 핍박 받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한숨과 자욱한 최루탄의 연기 속에서 눈물로 피어오른 민주화가 이뤄낸 6.29선언. (♬♪ 한번은 아주 ~ 추워~서 혼들~이 났다는데 ~♪♩)
해냈다는 흥분도 잠시. 대통령 단일화 불발에 크게 낙심한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독일의 통일을 부러워만 했고 강대국의 원유전쟁에 속절없이 휘둘려 갈피를 못 잡다가 IMF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맞고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놀란 새가슴이 되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일상이라는 생활로 숨어드는 동안, 세상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가며 화살은 탄 세월은 빠르게 지나 잊혀 져 갔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 밤하늘에는 그래~도 별이 떠 ~ ~ ~ ♪♬ 누가 ~ 살았~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
“엄마! 아세요? 혹ㅡ시, 보셨어요?”
무심코 건네받은 딸아이의 핸드폰 속엔 “안녕들 하십니까?”란 손 글씨 대자보가 눈에 띄었다.
‘여러 가지의 부당함과 수차례의 갖가지 의혹들로 하수상한 이 사회가 과연, 21C가 맞는지 의문이라며 남의 일이라고 외면해도 괜찮으시냐?’는 글귀는, 화석이 되어버린 나의 비겁함을 꾸짖고 있는 듯 했다. 이제 그만, 그 이기적인 무관심에서 어서 깨어나라고... (♬♪아주 ~ 옛날~에는 사람이 안 살았~다는데 ~ ♬♩그럼 ~ 무엇이 생겼었~을까 ~♩♪)
우리의 기만과 방관이 부른, 가슴 먹먹한 참사로 얼룩져 지나는 이 봄. 뒤늦은 후회와 반성으로 이제, 무거운 침묵에서 깨어나 지금과 다른 여름을 준비하려 한다. 새로 다가올 봄에는 밝고 희망찬 소식으로 싱그러운 봄을 만끽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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