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고모역, 비 내리는 고모령

▲ 가요 '비 내리는 고모령'의 주무대인 고모역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

예능 ‘불후의 명곡’에서 가수 알리가 다시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의 가사다. 노래의 ‘고모령’은 경부선 고모역의 역명유래에 영향을 준 곳이며 이 곡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돌아볼 고(顧), 어머니 모(母). ‘고모’ 뜻을 풀어보면 ‘어머니가 돌아보고 간 곳’이다. 고모령에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고모령 일대에 장군남매가 살고 있었다. 여동생이 오빠보다 힘이 셌는데 오빠는 이에 질투를 느꼈다. 오빠와 여동생은 시합을 해 각자 산을 쌓지만 오빠는 여동생의 산을 무너뜨린다. 남매의 어머니는 사실을 알고 자식들에게 실망을 느끼며 집을 떠났다. 그리고 어느 언덕에 이르러 집을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이 고모령이다.

전설 속에서 부모와 자식이 이별을 하던 고모령은 일제 강점기에도 이별의 장이 됐다. 타국의 전쟁터로 가야하는 청년들은 고모역에서 부모에게 눈물의 작별인사를 고했다. 부모들은 아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고모역으로 모였다. 근대 한국인들이 겪었던 한이 그대로 묻어 있는 곳이다. 당대 민중의 아픔은 대중가요로도 표출됐으니, 가수 고 현인 씨의 ‘비내리는 고모령’이다. 작사가 유호 씨가 고모역에서 어느 모자가 이별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작사하고 작곡가 박시춘 씨가 작곡했다. 이 노래가 식민통치의 상처를 입은 민중들에게 큰 위로가 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현재 고모역은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코레일이 주관한 공모전에서 설준원 대구 수성문화원 이사와 이상규 경북대 교수 등이 제안한 ‘고모역 활성화를 위한 위탁운영 방안’이 대상을 받았다. ‘민족 수난사의 상징’이라는 고모역의 역사를 잘 살린 덕분이다. 실제로 지난 1월 고모역을 방문해 ‘문화융성은 고모령가요박물관부터’라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역 안에는 ‘비 내리는 고모령’이 수록된 음반 이미지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코레일 측에 따르면 위탁운영주체들이 예산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탓에 아직까지는 역에서 문화행사나 강좌만 진행하는 정도라고 한다. 여객취급을 중단한지 10년째, 내부 접근은 제한돼있다. 접근성도 감점 요인이다. 역 앞으로 오는 버스는 하루 10회만 있고 인근의 연호역(대구지하철 2호선)에서 20분가량 걸어야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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