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신문방송3

고백하건대, 필자는 사실 꽤 지저분한 편이다. 더러운 것을 못 참는 언니가 아니었다면 이미 방은 돼지우리가 되었을 것이다. 우스운 것은 이런 필자의 모습에 친구들이 적잖이 놀란다는 점이다. 아마 상(像) 때문일 것이다. 좀 지저분하긴 해도 꼴에 예의 차리는 걸 좋아해서 어디를 나가도 떡진 머리에 슬리퍼 질질 끌고 나가는 법은 없으니까. 이미지를 해석하지 않고, 그저 표상(表象)으로서 받아들인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고백할 것이 하나 더 있다. 해석하고 생각하는 것이 귀찮다보니 필자 역시도 사소한 것 이상의 모든 것을 이미지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논란이 뜨겁다. 최근 일베는 본인들을 비하하는 용어인 ‘일베충’이란 단어를 끔찍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의 유족들에 대입하는, 가히 ‘미친’ 응용력까지 보여줬다. 이런 일들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어차피 일베 같은 걸 하는 사람은 소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런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느 새인가 일베의 파급력은 엄청나게 커져버렸다. 분명 좋은 파급력은 아니다. 하지만 일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아마 지금의 엄청난 관심도 일베 유저들에게는 꽤 즐거운 것일지 모르겠다고 이제야 조심스럽게 ‘해석’해본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런 일베를 그저 표상으로 바라본 것 같다는 점이다. 흔히 일베 유저들은 스스로를 ‘보수’라고 일컫는 것 같아 보인다. 표상이다. 그러나 최근 일베 유저들에 대한 보도와 분석을 보면, 이들에게 굳이 색깔이 있을까 싶다. 그저 ‘일베에서 그렇게 말하니까’ 본인도 따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말로는 전두환이니 노무현이니 하지만, 이념적인 문제는 비교적 소수의 유저들에 의해 기저에 깔린 것일 뿐이다.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일베는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 표출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상의 표상을 본다. 당연한 거다. 그러나 그 뿐이면 될까. 어떤 것이든 표상과 표상이 모이면 현상이 되고, 현상이 되는 순간 그 상의 집합은 힘을 갖는다.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외치고, 진도의 사고대책본부는 분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총 책임자인 대통령은 ‘관련 책임자들을 문책’한다 말하는 ‘3인칭 화법’을 훌륭하게 구사하고, 자막까지 빨간색을 뒤집어쓴 언론은 총리가 물러났다며 대통령의 말에 맞장구를 쳐준다. 그 밖에도 수많은 ‘사소한’ 표상들……. 우리는 그 표상들이 만들어낸 현상으로 구성된 세계라는 늪에서 살아간다.

마지막 고백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표상들은, 이미 꽤 강한 힘으로 우리 모두를 광기의 늪으로 던져 넣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상의 표상만을 바라본 나는 이미 광기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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